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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달라진 흥행코드의 주연 ‘수퍼히어로’

입력 : 2019-09-15 10:49:14 수정 : 2019-09-15 10: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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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폐막된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조커’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엄밀히 수퍼히어로 영화라 볼 순 없지만 수퍼히어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인 건 맞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퍼히어로 세계관 영화가 최고상을, 아니 그 어떤 상이라도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는 일찌감치 제91회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블랙팬서’가 최우수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해이기도 하다. 수퍼히어로 영화사상 최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다. 그 바로 전해엔 ‘로건’이 수퍼히어로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지명된 바 있다. ‘조커’의 베니스영화제 수상도 결국 이 같은 흐름에 탄력받았다 볼 수 있다. 즉 올해는 그간 영화상에서 유독 제값을 못 받아온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일제히 보상받는 흐름이란 얘기다.

 

언뜻 1950년대 후반~1960년대 후반 뮤지컬 장르에 돌아온 ‘상복’과 맥락이 유사하단 인상이다. 뮤지컬 장르는 유성영화 시작 이후 꾸준히 캐시카우 장르로서 주목받아왔지만, ‘진지한’ 장르라기보다 그저 웃고 즐기는 가벼운 상업 장르 인식이 강했다. 그 탓에 유난히 상복은 떨어졌다. 그러다 임계점을 넘어 뮤지컬이 할리우드 대표 장르로서 전 세계인들에 인식되는 상황이 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1958년부터 1968년까지 11년간 뮤지컬 영화는 무려 5번이나 아카데미 작품상을 가져갔다. 절반인 셈이다. ‘지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마이 페어 레이디’ ‘사운드 오브 뮤직’ ‘올리버’ 등이다. 그밖에 ‘메리 포핀스’나 ‘화니 걸’ 등 히트 뮤지컬도 작품상 후보 정도론 꼬박꼬박 올랐다. 아카데미상만도 아니다. 칸국제영화제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1964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자끄 드미 감독의 프랑스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 돌아갔다.

 

지금 ‘조커’와 ‘블랙팬서’에 돌아온 상복도 이런 흐름의 시작일 수 있다. 그 상업적 성과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전 세계에 막대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 콧대 높던 영화상들도 대중과의 밸런스를 위해 결국 이를 인정해주는 자세로 나가게 되는 흐름. 만장일치 찬사를 얻은 ‘다크 나이트’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지명에 결국 실패했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수퍼히어로 영화 열풍은 1950~60년대 뮤지컬 영화 상황과 좀 다르다. 지금은 수퍼히어로 영화가 ‘지나치게’ 시장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할리우드 사상 이 정도로 특정 서브장르가 시장을 독식해버린 때가 또 있었나 싶다. 1950~60년대는 상대적으로 여러 장르-서브장르들이 시장을 고르게 나눠 갖던 시절이다. 뮤지컬과 함께 ‘쿼바디스’ ‘성의’ ‘십계’ ‘벤허’ 등 성서 블록버스터, ‘콰이강의 다리’ ‘나바론 요새’ ‘대탈출’ 등 2차대전 소재 전쟁영화, 007류 스파이 영화와 웨스턴 영화들이 각축전을 벌이며 그해 흥행 톱10을 고르게 채웠다.

 

지금은 다르다. 특히 3~4년 전부터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2016~17년 연별 북미 박스오피스 10위 내 수퍼히어로 영화는 4편이었다. 그러다 지난해엔 10위 내 6편이 수퍼히어로 영화들로 채워졌다. 절반도 넘었다. 올해도 벌써 10위 내 3편이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들로 채워진 상태다. 여기에 곧 흥행 성공이 확실한 ‘조커’ 등이 더 개봉한다. 이쯤 되면 ‘수퍼히어로 전성시대’ 정도가 아니다. ‘수퍼히어로 초토화 시대’다.

 

원인은 여러 가질 들 수 있다. 먼저 수퍼히어로 서브 장르가 넷플릭스 등 OTT 시대에 맞설 극장용 영화 최적화 모델로 선택된 점이 있다. 가장 ‘놀이공원 어트랙션’에 가까운 서브 장르로서 말이다. 한편 ‘세계관’ 전략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할 수 있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흥행 성공이 가능했단 점도 있다. 점차 소재나 주제보단 캐릭터 중심으로 흥행코드가 바뀌는 영화시장 흐름에도 적합하단 점이 있다. 이 밖에도 성공 요인은 많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 같은 성공 요인들이 단기간 내 다른 서브 장르들에 추월 될 성격은 아니란 점이다. 행이건 불행이건 지금 같은 ‘수퍼히어로 전성시대’ ‘수퍼히어로 초토화 시대’는 한동안 끝날 일이 없다. 더구나 이제 비평적 차원까지 영화상이란 실체화된 형식으로 인정받게 된 시점이다. ‘시대의 총아’ 격 상품으로서 방점이 찍힌다. 아무리 짧게 봐도 향후 4~5년 정도는 지금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10년 정도까지 더 갈 수 있다.

 

물론 5년이건 10년이건 모든 트렌드는 결국 끝난다. 지금처럼 과열된 트렌드라면 더 그렇다. 문제는 수퍼히어로 영화가 이미 자체적으로 이노베이션을 시작하며 서브 장르 내에서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단 점이다. ‘조커’부터가 그렇다. 사실상 사회파적 심리영화에 가깝단 평가다. 리얼리즘과 맞닿은 하드보일드 액션으론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이 숱한 영향을 뿌리고 있다. 어쩌면 ‘왓치맨’ 같은 철학적 수퍼히어로 영화도 다시 만들어질지 모른다. ‘수퍼히어로’란 큰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장르적 접근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렇게 천편일률화를 스스로 막고 있다. 그만큼 트렌드 교체도 더 늦어질 수 있다.

 

어찌 됐건 내년에도 수퍼히어로 영화는 쏟아진다. ‘블랙 위도우’와 ‘이터널스’ 등 마블 원작으로만 5편이 나오고, ‘원더우먼 1984’와 ‘버즈 오브 프레이’ 등 DC 원작으로 3편이 더 나간다. 그밖에 다른 레이블 만화도 하나둘 영화화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인크레더블 2’와 ‘글래스’ 흥행 성공으로 만화원작이 존재하지 않는 오리지널 수퍼히어로 애니메이션, 유사 수퍼히어로 영화들 역시 꾸준히 기획될 수 있다. 또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처럼 이미 실사 프랜차이즈가 진행되는 상태에서 애니메이션 판을 따로 제작해 병행시킬 수도 있다.

 

이렇듯 지금은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수퍼히어로 영화가 시즌을 가리지 않고 멀티플렉스 상영관 절반을 차지하는 광경도 아마 그럴 것이다. 개혁하건 규제를 가하건 한두 해 내로 쉽게 끝날 광경이 아니다. 수퍼히어로 영화 팬들이라면 최고의 ‘한창 때’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훗날 상당히 곤혹스러웠던 시절로만 기억될 듯싶다. 이 특이한 시절에 대한 평가 역시 결국 그 ‘훗날’에 이르러서야 냉정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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