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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일의 온에어]스포츠 아나운서가 되는 법?...요행보다 '기본'이 먼저입니다

입력 : 2019-10-17 19:00:00 수정 : 2019-10-17 19: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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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스포츠 아나운서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상파 방송뿐 아니라 인터넷 방송까지 포함하면 생각보다 많다. 공급은 넘치는데 회사의 수요가 항상 적다. 모집하는 빈도도 낮고 어쩌다 한 번 공개채용을 모집해도 채용인원은 극소수다. 제아무리 실력이나 잠재력이 뛰어나도 시기가 맞지 않으면 아나운서라는 꿈을 이루기가 어렵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지녀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스포츠 아나운서로 데뷔할 수 있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곤란하다. 기억을 돌려 과정을 떠올려봐도 결국 운이었다. 아나운서로 살아가면서도 방법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는 법'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아나운서 아카데미 혹은 개인 교습으로 발성을 가다듬고 시험에 수차례 낙방하고 입문하는 게 유일한 길이다. 대신 첫 관문을 통과한 초보 아나운서가 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아나운서가 어떻게 방송을 준비하는지 안다면 아나운서라는 이상을 좇는 준비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스포츠 아나운서는 즉석에서 벌어지는 일을 묘사하고 전달하는 직업이다. 실시간 방송에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특정 종목에 대한 이해도나 운동 경험보다 발음, 톤 조절 등 말하기의 기본이 먼저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아나운서 직책을 얻어도 바로 중계방송에 투입되진 않는다. 보통 야구나 축구 등 인기 종목의 하이라이트 더빙부터 시작해 경험을 쌓는다. 주로 선배들의 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자신만의 뼈대를 만들어나가는 일종의 걸음마 단계다. 

 

실전 투입 전까진 매일같이 선배들에게 연습 결과물을 검사받는데 내 기억엔 칭찬보단 혼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돌이켜보면 하루 24시간 중 가장 무섭고 힘든 시간이 그때였다. 선배가 편집기 데크의 조그셔틀을 치면서 테이프를 멈추는 순간엔 내 심장도 정지하는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토록 싫었던 그때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관심이 없으면 보지도 않는다. 실력 여부를 떠나 그냥 표류하도록 방관한다. 내 입장에선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꼴이다.

 

조심해야할 점도 있다. 선배들의 특정 표현이나 말투를 그대로 복사하면 안되는 게 업계의 불문율이다. 방송에서 쓸 표현은 스스로 개발하는 게 원칙이다.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창작물은 없고 회사별 고유 기조에 영향을 받아 닮아가는 부분도 있지만 표현을 베끼는 건 아나운서로서 부끄러운 일로 취급한다. 이름난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중계를 떠올려 보면 그들이 특정 상황에 활용하는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나운서끼리 장난 삼아 동료 성대모사를 하기도 하는데 유명한 선배들은 색깔이 뚜렷해 복사하기가 쉽다. 반면 나는 무색무취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 내 흉내를 내는 동료를 보지 못했다. 어중간한 존재인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나만의 정체성이라고 믿고 있다.

 

언덕을 올라 정상 고지에 도달하면 자신만의 주특기가 생긴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고 말투나 발성도 판이하다. 즉 선호도는 차치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종목도 달라진다. 보통 체육 기자들처럼 하계와 동계 종목을 하나씩 가진다. 야구와 축구를 큰 맥락에서 반으로 나누고 반대로 겨울엔 배구와 농구 중 하나를 택하는 맥락이다. 부차적으로 다른 종목들도 맡게 되는데 한 종목만 전담하는 스페셜리스트는 스포츠 케이블 방송사에는 없다. 골프나 당구처럼 한 종목만 다루는 채널에서 방송을 하는 선후배들 역시 다른 종목 중계에 지금 당장 투입되도 무리가 없다.

 

 정신 없이 하계와 동계를 소화하면 어느새 일 년을 마무리한다. 매년 연말마다 주요 스포츠케이블 방송사 아나운서들이 돌아가며 스포츠 캐스터 연합회를 개최한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서로 얼굴이 보기 힘든 동료들끼리 한 번씩 만나 친목을 다지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다. 언젠가 '더빙 캐스터'라는 딱지를 달고 있다가 처음으로 연합회에 참가했었다. 그 때의 감정은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스포츠를 중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잘 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스포츠 아나운서로서의 삶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소준일 KBS N 스포츠 아나운서

 

정리=전영민 기자

사진=소준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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