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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노스탤지어 시장의 성공 가능성

입력 : 2019-12-08 16:27:08 수정 : 2019-12-08 16: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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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케이블채널 채널J에서 일본과 거의 동시방송 중인 일본민방 4분기 드라마 두 편이 있다. 후지TV ‘아직 결혼 못하는 남자’와 TV아사히 ‘시효경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시급한’ 국내편성이 이뤄진 이유는 하나다. 모두 한국서도 나름 친숙한 일본드라마 속편들이기 때문이다.

 

시즌 개념으로 보면 전자는 ‘결혼 못하는 남자’ 시즌2, 후자는 ‘시효경찰’ 시즌3다. 그런데 그 텀이 상식 밖이다. ‘아직 결혼 못하는 남자’는 무려 13년 만의 시즌2다. ‘시효경찰 시작했습니다’ 역시 시즌2인 ‘돌아온 시효경찰’로부터 어언 12년 만이다. 엄밀히 이런 걸 기존 시즌 개념에 넣는 게 맞는지조차 애매해진다.

 

그런데 이런 식 ‘엄청나게 뒤늦은 새 시즌’ 개념은 본래 존재한다. 예컨대 미국서도 마찬가지다. 시즌2로부터 무려 26년 만에 부활한 2017년 ‘트윈 픽스’ 시즌3, 시즌9로부터 15년 만에 이어진 2016년 ‘X파일’ 시즌10 등이 예다. 당연히 영화 등 여타 장르에서도 비슷한 개념들은 반복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이를 일반적 속편 개념으로 본다기보다, 이른바 ‘노스탤지어 상품’으로서 따로 분류하곤 한다.

 

말 그대로다. 전편을 즐긴 다수대중을 그대로 끌어모으려는 일반 속편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그런 경우 아무리 길어도 5년 이내 속편이 나오지 않으면 연결이 힘들다. 반면 노스탤지어 상품은 아직 전편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간직하고 있는 골수들, ‘마니아층’만 딱 골라 끌고 가는 압점 논리 상품이다. 개념 자체가 다르고, 사실 만들어지는 방식도 좀 다르다.

 

올 초 일본서 등장한 또 다른 노스탤지어 상품, 29년 만의 4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티 헌터: 신주쿠 프라이빗 아이즈’만 봐도 그 ‘만들어지는 방식’ 차이를 알 수 있다. 기존 ‘시티 헌터’ 주요 등장인물들이 마치 선물세트처럼 잠깐이라도 모두 등장해야 하고, OST도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TV판 삽입곡 퍼레이드다. ‘아직 결혼 못하는 남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전편 반복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싫건 좋건 계속 마주쳐야 하는 중년여성’ ‘옆집 젊은 여성’ ‘옆집 애완견’ 등 전편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 마디로, ‘가능한 전편 반복으로 가야 한다’라는 한계가 있단 얘기다. 전편 등장 인물과 설정을 놓고 가능한 한 신선하게 뽑아내야 한다는 일반 속편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전편의 반복이 될수록 수요층은 만족한다. 어떤 의미에선 ‘전편의 망령(?)에 사로잡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소비층이기 때문이다. 새롭고 신선하게 갈수록 ‘이런 건 내가 알고 있던 게 아니’란 반발을 일으키며 불만을 토한다. 비평계에선 새로운 시도라며 호평했지만 정작 마니아층에선 큰 반발을 일으켰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정도를 생각해보면 쉽다.

 

이제 한국을 보자. 한국은 노스탤지어건 뭐건 아예 속편 자체가 드문 환경이다. 특히 영화 장르의 경우 등장 인물 캐릭터 성으로 대결하는 속편 개념과 달리 한국은 캐릭터가 놓인 ‘상황’ 중심 전개란 점에서 속편 성립이 본래 어렵다. 당장 올해 흥행 1위 자리에 오른 영화 ‘극한직업’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치킨집’이 빠진 등장 인물들 후일담에 무슨 관심이 가겠느냐 말이다. 그만큼 캐릭터 성은 엷고, 소재주의가 강하다. 그러니 올해 개봉한 ‘타짜’ 프랜차이즈 3편 격 ‘타짜; 원 아이드 잭’처럼 캐릭터 자체가 바뀐 ‘무늬만 속편’들이 난무한다.

 

한국서 굳이 노스탤지어 상품 개념을 동원하고자 한다면,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건 사실 TV드라마 장르다. TV드라마야말로 소재 그 자체보단 캐릭터성으로 승부하는 측면이 강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선한 소재를 들고나와도 캐릭터 성으로 시청자를 붙들어놓지 못하면 20여회 이상 분량을 성공적으로 끌고 갈 수가 없다. 그래서 팬들에게 가장 오래도록 사랑받고 기억되는 캐릭터도 대부분 TV드라마 캐릭터들인 경우가 많다.

 

한편 다양한 케이블 채널들에서 과거 사반세기에 걸친 TV드라마 히트작들이 끊임없이 재방송되는 상황도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콘텐츠가 본방송 시청자들에 ‘잊히지 않도록’ 하는 효과에 더해, 일부 신규 시청자층을 모아 자연스럽게 속편 효과를 내주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시장상품은 성격이 다양할수록 좋다. 다양할수록 다양한 소비자 요구에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요가 채워지지 못하는 ‘빈틈’들을 하나둘 메워나가야 시장은 풍성하고 탄탄하며 부침 없이 흘러갈 수 있는 법이다. 노스탤지어 상품 개념 역시 어찌 됐건 시장을 좀 더 폭넓은 성격으로 확장하고자 할 때 충분히 응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그쪽이 각종 마니아 시장 중 가장 충성도 높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특정 장르 마니아 시장보다도 노스탤지어 자극 쪽 충성도가 훨씬 높다.

 

그리고 한국서도 이미 노스탤지어 시장에 대한 청신호 자체는 계속 오고 있다. 젝스키스, 핑클 등 ‘추억의 아이돌’ 재결합부터 ‘온라인 탑골공원’의 충격적 반향까지 3040계층 노스탤지어 열기는 이미 확인됐다. 최소 대중음악 장르에선 지난 수년간 꾸준히 노스탤지어 상품의 시장 가능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이제 다른 장르들도 한 번 같은 개념에 도전해볼 때다. 언급했듯, 한국 실정에선 TV드라마 장르가 가장 유리할 수 있다. 뒤늦은 ‘겨울연가’ 시즌2, 뒤늦은 ‘커피프린스 1호점’ 시즌2 등 다양한 발상이 가능하다. 흥미로운 실험들을 기대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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