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들의 성공적 유입
K-뮤지컬 지속 성장 위해 창작 생태계 개선 필요
K-뮤지컬은 세계 주요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영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 규모의 시장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이러한 위상은 지난 20여년 동안 지속돼 온 콘텐츠 개발, 관객층 확대, 해외 진출을 통한 경험 축적, 인기 아이돌의 참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국내 창작 환경은 여전히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라이선스에서 창작으로…K-뮤지컬의 체질 개선
국내 뮤지컬 시장의 도약은 200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시기 한국 공연계에는 지킬앤하이드, 맘마미아,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등 세계적인 라이선스 작품들이 속속 도입되며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1년 국내 첫 상륙한 오페라의 유령은 7개월 동안 244회 공연으로 192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국내 시장의 뮤지컬 붐을 일으켰다.
2010년대 이후 국내 공연계는 한국형 창작 뮤지컬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영웅, 프랑켄슈타인, 광화문연가, 웃는 남자 등 한국 고유의 정서와 창작 역량이 결합된 작품이 잇달아 등장했다. 당시 작품들은 국내 흥행뿐 아니라 해외 진출 가능성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K-뮤지컬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6월 박천휴 작가의 창작 뮤지컬인 어쩌면 해피엔딩이 제78회 토니어워즈에서 무려 6관왕을 차지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토니어워즈는 브로드웨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시상식이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도 한층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창작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단독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뮤지컬은 가상의 조선을 배경으로 억압된 세상 속에서도 시조와 춤으로 자유와 희망을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국 매체는 호평했고, 이는 K-뮤지컬이 본고장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로 평가받았다.
명성황후와 영웅을 선보였던 제작사 에이콤은 신작 몽유도원으로 세계 무대를 겨냥한다. 삼국사기 속 도미전 설화를 모티브로 도미와 아랑의 사랑과 왕 여경의 헛된 욕망을 통해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인생의 의미를 그린 작품이다. 내년 1월 국립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8월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 데이비드 코크 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K-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한국 창작 뮤지컬이 글로벌 산업 네트워크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뮤지컬이 신흥 시장이 아닌 이미 확실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흥행 공식 바꾼 K-팝 스타들의 성공적 유입
국내 뮤지컬 무대에서는 가수 출신 배우의 활약이 기폭제로 작용했다. 탄탄한 가창력과 무대 경험을 가진 가수가 하나둘 자연스럽게 뮤지컬로 이동하며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가요계 스타들이 본격적으로 뮤지컬 무대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핑클의 메인보컬이었던 옥주현은 2005년 엘튼 존이 작곡한 브로드웨이 블록버스터 아이다의 주인공 아이다 역으로 뮤지컬 무대를 밟았다. 데뷔 첫 작품부터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주역을 맡으며 화제를 모았다. 뛰어난 성량과 안정적인 테크닉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아이돌 출신에 대한 편견을 단숨에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데뷔 첫해 한국 뮤지컬 대상에서 여우 신인상을 받았다. 현재는 독보적인 뮤지컬계 디바다.
김준수도 보이그룹 동방신기 출신의 뮤지컬 배우 1세대다. 스타 캐스팅을 넘어 흥행을 좌우하는 배우라는 새로운 개념을 국내 시장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2010년 국내 초연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역으로 데뷔한 김준수는 신인상과 인기스타상을 휩쓸었고 데뷔 2년 만에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들의 성공적인 진출 이후 K-팝 가수가 뮤지컬을 주력 커리어로 삼을 수 있다는 공식이 자리잡았다. 아이비, 슈퍼주니어 규현, 인피니트 김성규 등 많은 가수들이 뮤지컬로도 박수를 받았고, 최근에는 아이오아이·위키미키 최유정과 엠블랙 이준, 라붐 솔빈까지 대형 작품의 주연으로 활약하며 가수들의 뮤지컬 계보를 잇고 있다.
◆다음 과제는 지원 환경의 개선
이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환경 개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할 시점이다. K-뮤지컬이 한류 콘텐츠의 다음 축으로 부상한 만큼 안정적인 제작 환경과 공연장 인프라 확충, 창작 생태계 다변화 등 장기적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사실상 전무한 공적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초연 후 10년이 넘게 국내외에서 꾸준히 무대에 올라왔지만, 정부 공식 지원금은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일본 공연 공동 제작 지원금 3억원이 전부였다.
제작자·창작자들은 성장세가 국내 산업 기반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뮤지컬산업진흥법 제정은 오랜 숙원이다. 21대 국회에서 뮤지컬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으나,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당시 법안은 산업 진흥 기본계획 수립, 전담 기구 설립, 전문 인력 양성, 창작 활성화, 해외 진출 지원 등을 포함했다. 22대 국회에서 동일한 내용의 법안이 재발의되면서 업계는 다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박천휴 작가는 “국내 산업에는 표준계약서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뮤지컬산업진흥법과 같은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창작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정부 역시 단계적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내년부터 K-뮤지컬 창·제작 복합 공간 임차 및 시범 공연 제작 지원, 해외 트라이아웃 공연 지원, 창작·제작진 해외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 신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한국 뮤지컬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창작 단계부터 해외 진출까지 이어지는 연속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이 과정을 전방위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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