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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발간 복서 장정구 "날 KO시켰던 건 다름아닌 여자"

입력 : 2009-02-26 16:12:34 수정 : 2009-02-26 16: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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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시절 모았던 재산, 전처의 배신으로 날려… 지금의 아내 만나 행복
 '나는 파이터다'를 최근 펴낸 장정구가 책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작고 가냘픈 아내의 품은 한없이 넓고 포근하고 따뜻했다. 이 여자를 위해서는 뭐든지 하리리. 나같은 놈 만난 것 후회하지 않게 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본문 186쪽)

 최근 ‘나는 파이터다’란 책을 펴낸 전 WBC 세계챔피언인 복싱 영웅 장정구(46). 125전 119승 53KO, WBC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15차례 방어라는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왕년의 챔피언도 ‘여자들’에게 만큼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나 보다.

 한참 챔피언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권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때, 그는 한번 타이틀 매치를 벌일 때마다 파이트 머니로 지금의 강남의 30평대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쥘 수 있었다. 한두 차례 방어전을 치른 것도 아니다. 무려 15번이나 싸워 챔피언 벨트를 지켰다.

 씀씀이가 헤프지 않았던 성격상 4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그는 분명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과거의 명성에 걸맞을 만큼 부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1980년대 전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았던 복싱 영웅의 얼굴은 여전히 다부지고 쏙 들어간 작은 눈빛은 아직도 매서웠다. 하지만 중년의 장정구 인생은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리는 도전자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책에서 “챔피언 5년8개월동안 벌어들인 돈은 상당한 액수였다”면서 “하지만 방어전에 성공하고 돈을 벌면서도 신이 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과거를 회상할 때면 그는 만감이 교차한다.

 왜일까. ‘지우고 싶었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챔피언 벨트를 노리고 아귀처럼 달려들던 도전자 도카사키와의 난전도 아니고 무앙차이에게 KO패를 당해 링 바닥에 뒹굴던 굴욕의 순간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전처와 지낸 3년의 결혼생활이다. 그는 1985년, 챔피언 시절 결혼을 했다. 결혼생활은 안정은 커녕 오히려 몸과 마음의 피폐함만 안겨줬다. 

 “한때 나의 아내였고 나의 장모였던 두 여자, 그들이 저지른 일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치명타였죠.”
 ‘장정구 다이어트 복싱 체육관’ 개관을 준비중인 장정구는 “복싱을 생활체육으로 정착시켜 사람들에게 친숙한 운동으로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두홍 기자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복서들의 주먹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던 장정구 아닌가. 무엇보다 무서운 적,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코 져본 적 없는 그가 ‘기댈 언덕’의 최후 보루인 가족에게 ‘도둑펀치’를 크게 한방 맞은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해선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레를 쳤다. 그러나 당시 겪은 환멸감은 여전한 듯했다.

 그는 책에서 만큼은 “이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없기에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며 “모두 사실에 입각한 진실”이라고 썼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두 모녀가 내 도장을 찍고 명의변경을 하다니…”(162쪽)

 피흘리며 번 돈이 뒷구멍으로 새나가는 걸 바보처럼 바라보는 게 무엇보다 싫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더이상 운동할 수 없는 상태였다.

 복서의 명예를 돈과 바꾸고 싶지 않았던 그는 결국 타이틀을 반납을 결심한다. 은퇴와 함께 마음을 다잡고 잘살아 보려 했다.

 그러나 아내와 장모는 또 그를 배반한다. 영광의 그늘이 이렇게 깊을 줄이야. 매맞고 번 돈을 다 빼앗기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변호사를 선임해 재산을 되찾으려도 했지만 그마저 그만뒀다. 이전투구 대신 챔피언의 명예를 선택한 것이다.

 분노와 절망으로 힘겨워하던 그의 곁에 천사가 나타났다. 유복한 가정 밑에서 자라고  좋은 대학 나온 지금의 아내(이숙경)를 만난 것이다.

 그는 물질을 잃은 대신 진정한 사랑을 얻었다. 행운이다. 안정을 되찾은 그는 세상의 어떠한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아내와 함께 20여년째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요즘엔 아예 팔불출 소리 듣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아내 자랑에 빠져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자신에게는 수호천사같은 아내이기 때문이다.

 “복서는 30%의 선천적 기질과 70%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피나는 노력이 부족한 30%를 채울 순 있지만 나태한 천재성이 70%를 커버하지는 못하죠.”

 그는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당신이 원하는 자리가 어디든 그 경쟁은 60억 대 1입니다. 기가 질리는 경쟁률이지만 결코 포기해선 안됩니다.목표를 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위해 원없이 쏟아부으세요.”

 장정구와 오래 전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는 탤런트 최수종은 책 발간 축하의 글에서 “사석에서 만난 장정구의 모습은 욕심도 없고 이해타산도 없는 사람이다. 알면 알수록 그는 순수하고 때론 천진스럽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이 좋아 친구가 되었다”고 썼다.

 프로권투가 위기인 것은 시대의 흐름의 결과일 수 있다. 그래도 왕년의 권투 챔피언 장정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권투라는 운동을 국민에게 보급시키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있다. 

 생활체육으로서의 권투 보급을 계획중인 그는 현재 ‘장정구 다이어트 복싱 체육관’ 개관을 위해 또 다른 버전의 땀을 쏟고 있다. 책나무출판사 펴냄, 1만2000원.

스포츠월드 강민영 전문기자 mykang@sportsworldi.com

◇장정구 프로필

▲1963년 부산 출생 ▲2000년 20세기 위대한 복서 25인(멕시코) ▲1988년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 15차 방어 ▲1983년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 획득 세계챔피언 ▲1980년 MBC 신인왕전 우수선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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