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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한땀 정성… 경이로운 선의 향연

입력 : 2009-05-10 21:13:19 수정 : 2009-05-10 2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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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 작가 개인전 20일 개막… 헤라만을 사용한 ‘신점묘법’, 감동의 세계
박해수 작가가 100호짜리 ‘해바라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보다도 더 많은 작은 실선들이 대형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고 그 안에는 알듯 모를 듯한 단순한 이미지들이 전개돼 있다. 19세기 점묘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는 듯 캔버스에는 상상도 못할 형형색색의 선들이 중첩돼 아련한 분위기를 낳고 있다(‘길’ 시리즈).

앤디 워홀의 작품 ‘꽃’ 연작과 천재화가 고흐의 ‘해바라기’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마치 여러 원색의 선인장 가시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색감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찬찬히 들여다 보면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잔잔한 아름다움을 주었던 작품이 작가의 지독한 고생의 산물임을 단박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징그러울’ 정도로 작은 실선들이 얽히고 설켜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예술작품으로 승화돼 있다. 화면 깊은 곳에서부터 맨 위까지 칼날로 찍은 색색의 실선들이 펼친 마티에르의 향연은 ‘눈물겨운’ 감동을 전한다.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생존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오는 20일 개막하는 서양화가 박해수(45)의 일곱번째 개인전에 걸릴 회화 작품들을 미리 본 소감이다. 
길 시리즈

이들 작품은 바닥에 붙은 껌을 떼는 데 사용하는 ‘헤라’라는 도구를 사용해 찍어서 그린 것들이다. 박해수는 붓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칼날 넓이가 5cm도 안되는 헤라나 1.5cm 남짓한 끌 같은 공구의 날에 아크릴 물감을 뭍혀 일일이 손으로 찍어 작품을 완성한다. 지겹도록 찍고 또 찍어야 하는 하는 만큼 고통스럽고 지루한 작업이다. 작가는 “사막을 물없이 가는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붓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실선을 찍어도 될 법한데도 그는 얇팍한 요령을 거부한다. 평균적으로 20∼30겹 덧칠을 하는데, 이번 전시에 선보일 ‘길’ 시리즈는100여겹 덧칠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필이 올 때까지 그리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열 겹만 덧칠해도 웬만한 수준의 작품이 나올 법도 한데 무슨 업보가 있기에 이처럼 칠하고 또 칠할까. 그것도 날카로운 칼날로 수천번, 수억번씩 찍어서 말이다.
해바라기 시리즈

박해수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이를 ‘신점묘법’의 탄생이라 표현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회화이면서 액션페인팅”이라 했다.

그의 독특한 기법은 그가 세계 최초인데 꿈속에서 영감을 받았다. 미대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미술학원 강사를 시작했다. 결국은 잘나가는 학원원장이 되어 18년동안 수십억원을 벌었다. 결혼에 실패한 그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박을 했고 결과는 쪽박이었다. 노부모의 도움으로 다시 재기한 그는 인생 이모작을 새롭게 펼쳤다. 먼저 잘못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진한 반성부터 했다. 학원도 접고 그림에 남은 인생을 걸었다. 인생 막장에서 맛본 눈물은 썼지만 한편으론 행복감이 밀려왔다. 궁하면 통하는가 보다. 선몽을 꾸었다. 8년 전의 일이다. 
작가가 가장 아끼는 작품인 ‘살고자함에’,2006

“보름동안 눈만 감으면 얇은 실선들이 자석의 음극 양극처럼 몰려들어 형상을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회화로 하면 좋겠다는 욕망이 생겠죠. 실제로 해보니 꿈과 현실이 달라 실패를 거듭하다 우연히 공구상에서 헤라 칼을 발견하고 이게 나의 도구가 될 수가 있겠구나 생각했죠. 결국 이러한 작업은 잘못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반성문을 쓰듯 하루 15시간씩 작품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

밀폐용기 수백개에 다양한 자기의 색깔을 담아 예리하게 캔버스를 찍어나가는 그는 “어떠한 테크닉도 없이 헤라 칼로 시작해 헤라 칼로 끝나는 작업”이라며 “전시회가 끝나도 5년 동안은 감상자들의 마음속에 남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부산 출신인 박해수는 중앙대 회화학과를 나와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2005년부터 작품활동에만 매진한 그는 2007년 동이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독특한 신점묘법 액션페인팅 작품에 국내외 컬렉터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월26일까지 계속될 이번 전시에는 100호짜리 그림 12개로 구성된 신작 ‘길’ 시리즈와 생존의 의미를 담은 ‘돌칼’ 시리즈 등 35점을 걸 예정이다. (02)736-1020

스포츠월드 강민영 전문기자 mykang@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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