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 시인·조선문학사 대표 |
광순박채(廣詢博採)란 말이 있다. 널리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물어 중의를 채택함을 뜻하는 말이다. 요샛말로 하면 여론조사를 두고 했던 옛분들의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을 모아 정책에 반영한다거나 정책의 기준을 삼는 등을 보면 정치적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다중의 의견을 좇고 존중하며 신뢰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ABC이기 때문이다.
진서(晉書)에 중구(衆口)는 축복의 문이라는 말이 있다. 중구는 여러 사람을 일컬음이니 곧 중의를 좇는 것이 행복의 문을 연다는 것에 연계된다. 그렇기는 하니 달리 따져보면 그 반대적 이치도 성립된다. 입이 많으면 시끄럽기 마련이고 시끄럽다 보면 종내에는 의견 대립이라는 상충의 충돌을 수반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험구에 욕설, 고함에 삿대질까지 겹쳐지면 중구는 필경 아수라장이 되는 이치를 성립시키기 마련이게 된다.
질서의 중구는 이와는 다른 말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음미해 볼만하다고 본다. 그것은 중구가 다중의 입이 아니라 다중의 입을 통해 도출해 낸 합일을 이끌어 낸 중의 곧 민중의 소리쯤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의 소리는 곧 국민의 소리이고 국민의 소리는 그래서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일찍이 사마천(司馬遷)이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것도 이런 연유에서 그랬을 것이란 추정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여론조사란게 과연 그 결과를 토대로 정책이나 국가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책차원의 중의를 모으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다. 하나 무슨무슨 여론조사를 통해 발표된 결과란 걸 보면 맹랑하기 그지 없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인기가 어떻고, 잘한다 못한다가 어떻고 따위 등등이 과연 국론이나 정책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흥미위주 차원을 넘지 못하는 여론조사는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도 떨쳐버리지 못할 때가 많다. 여론조사에 응하고 싶지 않을 소의가 이러하고 보면 수화기를 던지며 짜증을 낼법도 하지 않는가.
따르릉 6월선거 여론조사입니다 듣자마자 던져버린 수화기
허긴 중구(衆口)는 행복의 문이란 말 있긴 있더마는
글쎄 여론(與論)과 야론(野論)이 따로따로여서
박진환 시인·조선문학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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