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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기자의 G-세상 바로보기]“장관님 오십니다. 길을 비키세요”

입력 : 2009-12-04 16:39:55 수정 : 2009-12-04 16: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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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 2009’가 개막한 지난 26일 정오 무렵, 게임업체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비슷한 보도자료를 쏟아냈습니다.

 대부분 김형오 국회의장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허원제 의원이 자사의 부스를 방문해 게임을 체험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입법기관을 대표하는 인사와 게임산업의 주무부처 장관이 ‘친히’ 들렀으니 이는 가문의 영광(?)으로 추어올렸을 법도 합니다.

 당시 고위 인사들이 입장하는 곳마다 업체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들은 일렬로 도열,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게임을 체험하는데 불편함이 생길세라, 도우미를 앞장세워 친절하게 설명하고 사진 촬영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외국계 게임업체 한 곳은 의장 일행을 제대로 맞이하지 않은 탓에 업계로부터 ‘오만하다’며 미운 털이 박혔다고 하니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습니다.

 내방인사들에게 게임을 알리고 홍보하는 것,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군사정부 시절을 연상시키는 도열의 현장은 21세기, 그것도 최첨단을 걷는다는 게임산업에서 왠지 어색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업체 임원들이 오전 내내 일행을 따라다니며 ‘손과 발’을 자청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생기는데요.

 관료주의로 대변되는 한국사회에서 정부 유관기관 및 인사들과 친분을 쌓는 일은 일정 부분 사업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행위죠.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 열리는 대형 게임쇼를 보면, 솔직히 이같은 장면을 발견하기란 힘듭니다. 유사한 관료사회인 일본의 도쿄게임쇼에서조차 이런 ‘시추에이션’(상황)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다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나 간혹 보이는 모습일 뿐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지스타2009’ 이후 후폭풍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장관만 있고 유저들은 안중에도 없나”라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유저들을 동시에 만나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게임쇼에서, 게임의 미래를 논의하는 일은 뒤로 한 채 고위층 인사들을 향해 과도한 애정공세를 펼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행태입니다. 게다가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 업체 관계자들의 얼굴을 보니 ‘게임산업의 진정한 소비자는 누구인지’도 의심되는데요. 결국, 게임업체 대표와 임직원들이 지스타 기간 과연 얼마나 많은 유저들을 만나봤는지 묻고 싶은 대목입니다.

 게임산업은 촌각을 다투는 IT분야에서 총아(寵兒)로 불리고 있습니다. 게임업계가 과거의 인습을 극복하고, 게임을 사랑하는 이른바 ‘완소’(완전소중한) 고객을 향해 귀를 열고 머리를 숙이는 그날을 기다려봅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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