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베트남 하노이] 과거와 현재 공존하는 '스쿠터의 천국'을 가다

입력 : 2011-05-10 18:47:02 수정 : 2011-05-10 18:47:02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거리 가득 스쿠터 행렬…레이싱 서킷과 흡사
저렴한 기종부터 1000만원대 명품까지 다양
급격한 경제발전에 자동차 운전자 늘고있어
'스쿠터 장관' 제대로 보려면 하루 빨리 가봐야
하노이 거리에서 만난 '스타일리쉬' 스쿠터족들의 모습.
하노이의 아침은 스쿠터의 굉음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호안끼엠 호수옆 고층건물에 마련된 카페 테라스에 앉아 내려다본 도로는 흡사 스쿠터 레이싱 서킷 같은 모습이다. 새하안 아오자이를 팔랑거리며 자전거를 타는 아리따운 처자와 만나려던 로망은 무참히 깨져 버렸지만 스쿠터로 가득 찬 생경한 거리 풍경은 여행자에게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처음 하노이를 방문한 외국인이 끊이지 않는 스쿠터의 물결을 헤치며 길을 건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신호등은 시내 중심부에 몇 개 있는 희귀한 존재다. 사고나지 않고 길을 건너려면 반드시 한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스쿠터가 달려온다고 뒷걸음질은 금물이다. 스쿠터는 앞으로 걷는 보행자의 동선을 예측하고 사람의 뒤편으로 피해가기 때문이다. 몇 번 건너다 보면 나름대로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위험하다. 기자가 하노이에 머물렀던 3일 동안에만 교통사고로 2명이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재래시장 좁다란 통로에도 스쿠터를 몰고 들어온 아주머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노이 인구는 약 650만 명. 그들 중 대부분은 스쿠터를 주된 교통 수단으로 삼는다. 주로 일본산 스쿠터가 선호되지만 값비싼 이탈리아제 명품 스쿠터 ‘베스파’나 ‘피아지오’ 기종 역시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현지에서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500만∼1000만원에 육박한다. GNP가 2000달러 정도인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언 듯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명품 스쿠터의 주인은 뽀얀 얼굴과 S라인 몸매를 자랑하는 하노이 상위 1% 급의 ‘엘프녀’일 확률이 높다. 그녀들은 미니스커트에 망사 스타킹과 아찔한 킬 힐을 신고 명품백을 한쪽 팔에 두른 채 스쿠터를 탄다. 헤어스타일을 생각해 헬멧은 보통 쓰지 않는다. 공안의 단속이 엄격하지만 헬멧을 벗고 탄다는 것은 단속 걱정 없는 특권층이라는 과시 역할도 해준다. 하얀 피부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그녀들은 한국에서 수입된 자외선 차단용 ‘BB크림’으로 무장하거나 아랍여자들처럼 스카프로 얼굴 전체를 감싼다. 스쿠터 시트 역시 루이뷔통 모노그램 문양으로 튜닝하는 것이 인기다. 

하노이 젊은이들에게 스쿠터는 훌륭한 휴식처 역할도 해준다.
젊은 남자들은 스타일리쉬한 이탈리아제 스쿠터보다는 일본제 고성능 스쿠터를 선호한다. 역시 가격은 500만원 가량. 혼다의 최신형 스쿠터를 타는 훈남들 뒤에는 어김 없이 아름다운 처자들이 앉아서 베트남말로 ‘오빠 달려∼’를 외친다. 어둠이 깔린 호안끼엠 호수 주변에 가면 좁디 좁은 스쿠터 시트에 앉아 ‘므흣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연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저씨·아줌마들의 스쿠터는 이보다 저렴한 기종의 일본산이 많다. 여자들이 힘을 쓰는 나라 베트남에서는 빈둥거리는 중년 남자들이 유난히 많은 편인데, 이들은 좁다란 스쿠터 시트에 누워 낮잠을 자는 신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30년 전 모습을 간직한 재래시장에 가봐도 입이 떡 벌어진다. 미로처럼 좁다란 통로가 이어지는데 베트남 아줌마들은 스쿠터를 탄 채로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야채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시장 구경에 정신이 팔려 ‘멍 때리고’ 있다가는 빵빵거리는 경적소리와 사나운 베트남 아줌마의 욕설이 쏟아진다.

스쿠터는 하노이 거리의 90%를 점유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로 자동차들이 많아지고 있다. 스쿠터의 물결 속에서 자동차를 몰고 간다는 것은 무척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지만 하노이에서 자동차를 탄다는 것은 부를 과시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운전자들의 표정은 도도하기 그지없다. 일본차와 한국차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가끔 포르셰나 벤틀리 같은 고가의 차들도 지나간다. 이곳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차량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제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혹은 아우디 같은 차량이다. 우리나라보다 대략 20년 이상 뒤떨어졌다고 평가되지만 이 도시에는 벌써 광케이블이 깔렸고 스마트폰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발전의 속도와는 개념이 많이 다르다. 몇 년 후에는 하노이 거리가 스쿠터 대신 고급 수입차로 가득 차는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나라 베트남에 스쿠터 부대를 보려면 바로 지금 떠나야 한다.

하노이(베트남)=글·사진 전경우 기자 kwjun@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