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차길진과 세상만사] 18. 우리보다 우리의 문화를 더 잘 아는 세계인들

입력 : 2016-06-22 04:40:00 수정 : 2016-06-21 18:27:04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사람들은 비극과 희극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할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그 옛날 도시인들은 비극을 좋아했다고 한다. 반대로 시골 사람들은 희극을 더 좋아했다고.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니 웃음으로 하루의 피로를 날려보려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연극을 보면 희극이 더 많지만 예전보다 비극, 특히 죽음에 관한 공연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 만큼 죽음이 우리와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은 종교적 차이를 떠나 동양의 경우 관념적으로, 때로는 해학적으로 풀어나간다. 반면 서양은 매우 심미적이고 감성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아직'(AlreadyNotYet)이 프랑스 파리 샤요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다. '이미/아직'은 죽은 자(이미)와 살아있는 자(아직)들이 벌이는 속세의 다양한 모습과, 죽음과 삶 사이에서 벌어지는 제례의식을 현대무용으로 표현한 것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의 삶을 해체하여 다시 되돌아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파리 관객들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동양적 죽음, 특히 죽음 앞에서 원초적인 생의 에너지를 토해내는 한국의 굿이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죽음을 삶의 연장선에서 보는 동양적 세계관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면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과연 프랑스 사람들이 이해했을까.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그들이 이해했을까. 궁금하면서도 어쩌면 그들이 오히려 더 정확하게 이해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국의 대표적인 오페라 하우스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 건립 당시 총 본부장인 K씨는 영국 공보비서관 출신으로 나름대로 한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프랑스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서 민속자료를 수집해 갔는데, 우리의 무당에 관한 자료들을 많이 챙기는 것을 보았다. 무당들의 굿판을 생생하게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들과 전국 각지에서 녹음한 무가(巫歌) 모음집, 그리고 무당들이 쓰는 각종 무구(巫具)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무당에 관한 것이 아닌 게 없었다.

이를 본 K씨는 당황했고, 프랑스 관계자에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미신이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코드일 수 있습니까? 한국을 너무 저급하게 보는 것 아닌가요?”그러자 이 말을 들은 프랑스 관계자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한 번도 무당굿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신 모양이지요? 저희는 굿을 통해 한국 예술의 원동력을 발견하고 대단히 감동 받았습니다” 그들이 한국의 무당을 '아트 메이커'로 본다는데 크게 자극을 받은 K씨는 예술의 전당 건축 콘셉트를 민속 고유 전통에 맞추었다고 한다.

현대무용 '이미/아직’과 달리 죽음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연극이 있다. 연극 ‘염쟁이 유씨’와 연극 ‘오구’가 그것이다. 연극 ‘염쟁이 유씨’는 염쟁이를 통해 부자와 권력가, 그리고 조폭 등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 그러나 어느 집이나 크든 작든 겪게 되는 인생사를 무대에 펼쳐놓아 관객을 웃고 울렸다. 특히 산 자의 무병장수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굿인 ‘산오구굿’을 무대에 올린 연극 ‘오구’는 1990년 일본 도쿄(東京)국제연극제와 1991년 독일 에센세계연극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어 동서양이 느끼는 감정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 보는 연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연극 <구명시식>을 공연한 것이 2004년이다. 노(老) 부부의 애틋한 정과 기업의 비리를 기사화하기 전 잔인하게 살해당한 어느 경제부기자의 분노 등의 사연을 웃음과 슬픔으로 영혼세계와 접속시켜 젊은 관객들이 간접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이 연극은, 대학로에서 공연된 연극들 가운데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유니크한 공연이었다.

우리는 아주 슬플 때 오히려 웃었다. 슬픔의 경지를 뛰어넘어 해학적으로 풀어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문학과 예술을 통해 변주를 거듭해온 관념적인‘죽음’을 해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우리의 정서에 반한 서양인들이 이제는 그들 스스로 그 정서를 찾기도 한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동안 무대예술을 통해 웃음으로 얼마든지 생과 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전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생과 사의 예술은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죽음’에 대해 또 어떤 예술적 변주가 이루어질지 기대를 해본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