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 현실에 완벽히 대입시키는 건 무리다. 다만 지금을 살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 권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참고는 가능하다. 사실, 필자에게 검사란 드라마 '모래시계' 속 박상원의 이미지였다. 죽마고우라도 예외 없이 그 죄를 묻는 강직함, 그러면서도 법리 하나로 악과 맞서 싸울 줄 아는 치밀함. 그런 면모를 가진 자가 바로 1990년대 드라마 속 검사였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선지 2010년 이후 강직하고 치밀한 검사는 대중문화 속에서 사라졌다. '부당거래'를 비롯한 많은 영화가 검사의 비리를 고발했고, 드라마 속 평범한 주인공들은 법 때문에 고통받고 상처받기 일쑤였다.
2014년에는 권력의 부패를 정면으로 꼬집는 극본을 쓰기로 유명한 박경수 작가가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펀치'를 선보인다. '펀치'에는 2명의 검사가 등장한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검사 조재현(이태준 역)과 그를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렸다가 다시 떨어뜨리는 검사 김래원(박정환 역)이다. 극 중 김래원은 흙 수저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그는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검사 임용까지 받았지만, 이렇다 할 배경이 없어 승진과 성공은 언제나 남의 몫인 현실에 야속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 야심에 가득 찬 조재현을 만나 목숨을 다해 그를 보필하며 하나둘 씩 권력을 잡아간다. 그 과정 속에 박경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검사 세계에 대한 불신과 야욕은 여과 없이 드러난다. 국민을 돕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쓰여야 할 법이 그들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현실을 그려냄으로써, 순진무구한 국민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진정, 박상원 같은 검사는 없고, 조재현 같은 검사만 남게 된 걸까. 다행히도 최근 종영한 드라마 '피고인'이 그에 대해 해명했다. 열혈 검사로 등장한 지성(박정우 역)이 악마 같은 자본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면서 일부 오해를 풀었다. 매 회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며 그야말로 '고구마'만 던져주던 '피고인'은 마지막에 통쾌한 복수를 벌이면서 '정의는 살아있다'는 교훈을 안겼다. 오랜만에 우리가 원하는 검사가 나온 작품이었다.
요즘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재밌다는 말들이 많다. 좋은 사람들을 좋은 자리에 앉히는 당연한 일이 '피고인'의 마지막 복수극처럼 반전같이 느껴지기 때문인 듯하다.
현실에서나 그 밖에서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재벌도 권력자도 아닌 소시민이어야 한다. 그들이 승리하고 그들이 행복한 게 당연해야 한다는 말이다. 앞으로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복수 없이도, 사이다 같은 일들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드라마는 조금 재미없더라도, 현실은 아름다울 테니 말이다.
정들마(필명) / 밥처럼 드라마를 먹고 사는 'TV 덕후'다. 낮에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출퇴근을 하는 회사원이다. 그래서 약 20년째 주로 밤에 하는 드라마를 열렬히 시청 중이다.
사진 = SBS 드라마 ‘피고인’ 속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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