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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8-07 09:31:18, 수정 2017-09-28 17:33:06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한끼줍쇼', 민폐지만 성공한 이유

  •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가 지난 2일 42회 차에서 자체 최고시청률을 경신했다. 6.76%(AGB 닐슨코리아). 약 10개월 전 2.28%로 첫 방을 연 이래 배 이상 시청률이 올랐다. 거기다 처음으로 경쟁작인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를 누르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도 차지했다. 겹경사다.

    물론 42회 차의 경우 요즘 컴백 주가를 올리는 이효리 출연이 기폭제가 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끼줍쇼'는 지난 3개월여 간 그보다 인지도 떨어지는 게스트들과도 4.5% 시청률 이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대부분 5%를 넘겨왔다. 이젠 이 콘셉트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상파까지 통틀어 확고한 인기프로그램으로 불리기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끼줍쇼'에 대한 비판 포인트는 변함이 없다. 이른바 '민폐 프로그램'이란 악명 말이다. 인기 상승세인 지금도 해당 비판은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당연히 민폐 맞다. 프로그램 측에선 '식구들과 저녁 한 끼를 같이 하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들어보자'는 취지를 내밀긴 한다. 그러나 그런 취지는 사전섭외 없이 민간 가정집에 무턱대고 찾아와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상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무엇보다 이런 콘셉트가 소위 '따스한 우리네 정' 류 감흥과 연결되기가 무척 힘들다. 따스한 우리네 정은 이웃친지 내지 낯설더라도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나누자는 것이다. 불쑥 카메라 동원하고 초인종 누른 연예인들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거기다 프로그램 진행방식도 프라이버시 침해의 산 현장에 가깝다. 매회 무대가 되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변 집들 품평을 하고, 땅값까지 알아보며, 막상 한 끼 얻어먹으러 집에 들어가서도 가족관계나 직업 등등 가정의 세세한 프라이버시 사안들까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최소한도 일반인이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묻는 내용에선 크게 벗어난다. 이미 연예인과 스태프들을 집으로 불러들인 채 카메라를 맞이한 일반인들은 이런 프라이버시 침해에도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룰'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끼줍쇼'는 늘 보기에 불편하고, 보고난 뒤에도 뒷맛이 좋지 않아 각종 게시판에 악평들이 쏟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한끼줍쇼'는 이제 시청률 5~6%대 성공한 예능프로그램이 된 것도 사실이다. 향후 더 올라갈 여지도 충분히 있다. 그럼 이건 이제 저 유명한 '욕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의 반열에 올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처럼 기묘한 현상을 부르는 '욕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의 속성은 대체 무엇일까. 거의 대부분, 프로그램이 의도한 것 '이면의' 또 다른 요소가 대중에 어필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많이 알려졌듯, '한끼줍쇼'는 일본 니혼테레비 방송프로그램 '돌격! 이웃의 저녁밥'에서 모티브를 얻은 프로그램이다. 유명방송인 요네스케 진행으로 1985년부터 2011년까지 장수하다 2016년 BS니혼테레비로 자리를 옮겨 재개된, 가히 일본의 국민적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진행자 요네스케가 밥주걱을 들고선 사전섭외 없이 각 가정에 들이닥치는 콘셉트로 유명하다. 그리고 오랜 방송기간만큼이나 특이한 에피소드들도 많다. 도쿄 고급주택가 덴엔초후를 찾았을 땐 36집 초인종을 눌러 36집에서 모두 거절당한 사례도 있다. 한편 초인종 누르고 허락받아 들어가 보니 야쿠자 두목 집이었던 적도 있다. 해당 촬영 분은 방송에서 누락되는 사태를 빚었다.

    JTBC 제작진도 바로 이 점에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개인주의적이기로 잘 알려진 일본인들조차 이런 콘셉트에 부응해 국민적 프로그램으로 거듭났으니, 한국 환경에선 훨씬 나은 입지를 마련할 수 있으리란 기대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판단이었다. 2015년 일본 TBS 예능프로그램 '수요일의 다운타운'에서 실험한 결과가 있다. 같은 요네스케가 카메라를 동반하지 않은 채 각 가정 초인종을 누르고 밥 한 끼 달라고 하자, 요청한 52집에서 모두 거절당한 사례다. 방송과 관련 없는 상황이라면 '생면부지 타인을 집에 들여 밥을 같이 먹는다'는 발상 자체는 늘 어색하고 불편한 것이었단 얘기다.

    애초 '돌격! 이웃의 저녁밥'은 TV의 위력이 절대적이던 1980~90년대 당시 명성을 쌓은 프로그램이다. TV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비추기 위해 자기 프라이버시를 양보하던 사람들이 워낙 많았다. SNS 등 생면부지 타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낼 플랫폼이 존재하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니 그 당시엔 방송이 가능했던 것이고, 보는 사람들도 불편해하질 않았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저 프로그램 자체가 지난 30여 년 간 일본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상황이기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뿐이고, 그나마도 젊은 층은 보기 불편해해 일단 2011년 폐지됐다가 5년 뒤에야 BS계열로 자리 잡아 장년층 이상 향수만 자극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를 모티브로 삼은 2016년의 '한끼줍쇼' 역시 방송 시작과 함께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보기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이경규-강호동 두 진행자만 출연해 진행하던 1~9회까지는 1회 시청률이 곧 최고시청률이었다. 역대 최저시청률인 1.82%도 그 한가운데 6회 차에서 찍었다. 사실상 프로그램 존폐위기였다.

    그러다 10회부터 포맷을 바꿔 시작한 게 바로 연예인 게스트 섭외다. 처음 10회엔 걸그룹 구구단 멤버 세정이 나왔다. 곧바로 자체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대부분 얼굴을 알만한 유명인들, 특히 아이돌 중심 게스트 섭외가 이뤄졌다. 그러면서 바뀐 프로그램의 속성, 어쩌면 아예 근본 콘셉트까지 바꿔버린 부분이 있다. '한끼줍쇼'는 더 이상 현대 개인주의 분위기에 대항하는 프로그램이 아니게 됐다. 프라이버시 중시가 덕목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어떻게 현대 대중이 '셀레브리티의 힘'에 의해 그런 가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지에 대한 관찰 쇼가 돼버렸다. 그리고 그 가드가 세대별로 '어떤 셀레브리티'일 때 무너지는가가 관찰 포인트가 됐다.

    결국 지금의 '한끼줍쇼'는 명실상부 현대 한국사회에서 '셀레브리티' 특히 '대중문화계 셀레브리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매회 증명하는 프로그램이 됐다는 얘기다. '셀레브리티 파워 쇼'다. 근본 프로그램 취지와 기획의도에서 크게 벗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모티브가 된 '돌격! 이웃의 저녁밥'으로부터도 탈출하게 됐다. '무한도전' 등 여타 예능프로그램들이 처음엔 일본프로그램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왔다가 수차례 포맷 변화를 거쳐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역시 '무한도전'처럼, 그처럼 진화한 콘셉트로서 호응을 얻어 시청률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이것이 바로 TV가 절대 권력이 아닌 시대, SNS 등 인터넷 기반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시대의 진화버전 '돌격! 이웃의 저녁밥'인 셈이다.

    그러면서 시청자들 반응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민폐 부분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지만, 이제 다른 얘기들도 화두로 떠오른다. '나라면' 과연 저런 반짝반짝하는 스타들이 내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그들을 직접 보고 밥 먹으며 대화할 기회를 얻기 위해 내 프라이버시의 가드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대체 '누구라면' 내가, 아니 우리들 거의 대부분이 소중히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양보할 수 있을 것인가.

    몇 달 전 세계 3위 부호이자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 경매가 267만 달러로 낙찰됐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한화로 약 30억 원대 낙찰이다. 그 짧은 식사시간 동안 무슨 대단한 투자정보가 오가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런 걸 얘기해줄 리도 없을 것이다. 이것도 결국은 그저 셀레브리티 쇼에 불과하단 얘기다.

    이렇듯 지금 전 세계적으로 셀레브리티 가치는 폭등하고 있다. SNS 등 네트워크가 마련되면서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소수의 가치가 오히려 더 올라갔다는 분석도 있다. 1999년부터 시작된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 경매 역시 그렇다. 2001년까지만 해도 2만 달러 수준 낙찰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제 그 가치가 100배 이상으로 폭등한 지금, 어쩌면 이런 과정을 담는 방송프로그램도 등장할 수 있다. 민영상업방송에 있어 별다른 제재가 없는 미국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매번 다른 셀레브리티를 내세워 '밥 한 끼'를 놓고 그 경매 과정부터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 '한끼줍쇼'의 보다 거창한 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끼줍쇼' 같은 콘셉트의 셀레브리티 파워 쇼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한끼줍쇼'는 오히려 참 평범하고 점잖은 프로그램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방송 당시만 해도 충격적이었던 '욕하면서 보는 프로그램' 대표주자 막장드라마, 김치싸대기가 지금은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는 것처럼. 별로 먼 일일 것 같지도 않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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