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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2-17 10:00:37, 수정 2018-02-17 10:09:20

[권영준의 독한 평창다이어리] 묵묵히 응원 김연아…시끌벅적 치적쌓기 이기흥 회장

  • [스포츠월드=평창·권영준 기자] 윤성빈(24)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추운 날씨에도 현장에서 윤성빈을 응원했던 관중들은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 썰매 종목 사상 첫 금메달. 이 감격스러운 순간에 무대 위로 누군가 대거 등장했다. 흔히 말하는 고위 관계자들이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도 이들 무리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윤성빈과 국민이 기쁨을 나눠야 할 시간을 뺏은 채 윤성빈에게 다가갔다.

    역대 올림픽에서 이런 경우는 없었다. 금메달이 확정되면 그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피와 땀을 공유했던 코칭스태프, 동료와 함께 기쁨을 나눈다. 그다음은 태극기를 들고 응원을 아끼지 않은 관중 및 국민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누게 마련이다. 이 장면에서 선수와 국민은 함께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이날 현장은 달랐다. 고위 관계자들, 이른바 높은 신분들이 갑자기 뛰어들어 윤성빈과 국민이 함께 나눠야 할 기쁨의 시간을 뺏었다. 무례했다. 다행히 윤성빈은 이들을 뒤로 한 채 관중석으로 다가가 큰절을 올리며 새해 금빛 세배를 했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고위 관계자의 단체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배하고 뒤돌아선 윤성빈을 앞장세워 다시 사진 촬영에 열중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행동일까.

    이보다 앞서 슬라이딩 센터에는 김연아가 찾았다. 고위 관계자와 같은 논리였다면 4차 레이스에 응원을 오는 것이 맞다. 그러나 김연아는 3차 레이스에 현장을 찾았고, 묵묵히 윤성빈을 응원한 뒤 관중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높은 신분들과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한 번 더 장면을 되돌려 보자. 한국 국민을 매일 아침 ‘컬링 홀릭’에 빠트렸던 한국 컬링 믹스더블 대표팀의 ‘국민 남매’ 이기정과 장혜지가 예선 탈락의 아픔을 뒤로 한 채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날, 높으신 분들은 현장에 없었다. 여자 루지에 나선 ‘1세대 선수’ 성은령이 무릎 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수술 없이 재활로 이겨내며 트랙을 주행하던 날. 더 잘하지 못해 국민께 미안하다며 꺼이꺼이 울던 그 날, 고위 관계자들은 현장에 없었다.

    물론 고위관계자들의 스케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매일매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바쁘다. 그러나 유독 금메달이 나오는 현장에는 열성적으로 찾아 메달을 획득한 선수를 치하하면서, 메달권이 아닌 그늘지고 차가운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이들은 외면하는 것은 매우 아쉽다. 스포트라이트가 열리는 장소에만 찾아다니며 보여주기식 치적 쌓기라는 비판을 과연 피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특히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행보는 더 아쉽다. 이 체육회장은 지난 1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센터를 방문했다. 문제는 이 회장 일행이 예약된 VIP석에 무단으로 앉은 뒤 발생했다. 당시 VIP석을 관리하던 자원봉사자들이 이 회장 일행에게 자리를 옮겨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이 회장은 요지부동이었고, 급기야 체육회 고위 관계자가 언성을 높여 “머리를 좀 쓰라”며 “우리가 개최국이야”라고 꾸짖었다. 이 체육회장 측은 “바흐 IOC 위원장이 센터를 방문한다기에 만나서 인사를 하려고 했다"며 "소유하고 있는 AD카드는 출입 권한이 있는 카드"라고 해명했다.

    출입 권한이 있으면 충분히 설명으로 풀 수 있는 일이었지만, "우리가 개최국이야"라는 고함은 왜 질렀을까. 바흐 IOC 위원장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굳이 만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흐 IOC 위원장의 방문이 예정되지 않았다면,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을 찾았을까. 진정 크로스컨트리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것을 맞을까. 수많은 의문점이 남는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체육회장의 갑질 논란과 관련한 내용이 3건이나 올라와 있다. 청원 인원이 1000여명을 넘어섰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체육회장은 올림픽 개막 직전 행정 실수로 올림픽 참가가 무산된 스키 선수 경성현을 구제한다며, 바흐 IOC 위원장과 만남에서 이 사안을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이 결과에 대해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목놓아 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논란의 불씨가 커질까 두려워 발표하지 않은 것이다. 체육회 수장으로서 책임감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올림픽은 치적을 쌓은 곳이 아니다. 4년간 무수히 많은 땀과 피를 흘린 선수와 함께 곁을 지켜준 동료와 코칭스태프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온전히 국민과 함께 나눠야 한다. 이들에 대한 고위 관계자의 노고는 그 후에 치하해도 충분하다. 주인공이 되려는 욕심은 버려주길 바란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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