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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하정우, 피에로를 그리다

입력 : 2011-03-25 20:53:06 수정 : 2011-03-25 20: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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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어 대구 동원화랑서 전시중
wig?, 2011. 캔버스에 혼합매체
하정우. 사진제공=아트앤컬렉터
하정우는 배우다. 그것도 스타배우다.  하정우는 최근 공효진과 영화 ‘러브픽션’에 남녀 주인공으로 동반 캐스팅되는 등 배우로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하정우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정우는 지금까지 개인전 두 차례를 열었고 그룹전에도 몇 차례 참여한 바 있다. 

 중앙대 연극학과를 나온 하정우는 스물네살 때 영화 ‘마들린’으로 데뷔했다. 당연히 무명이었다. 방황이 따르던 시기였다. 그때 그에게 위안을 준 것은 다름 아닌 그림이었다. 수동성을 띨 수밖에 없는 배우라는 직업보다 캔버스에서 자기만의 세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마냥 행복했다. 피카소와 같은 작가가 되어볼까 하는 꿈에 젖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천상 배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연예인 가족의 피를 이어 받은 끼를 거부하진 못했던 것이다. 배우로 데뷔했고 아버지 못지않은 스타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연기경력 40여년의 중견 탤런트인 김용건씨이다.

 김용건씨는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이기도 했다. 하정우도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그림은 혼자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과감한 색감과 파격적인 화면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하정우의 ‘피에로 시리즈’ 개인전이 아트블루 기획으로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인사아트센터 본전시장에서 열렸다. 이어 지난 18일부터 2주간 동원화랑에서 그의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팝아트와 표현주의의 화풍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하정우 작가는 모든 인물을 기본적인 구조로 단순화하고 쉬운 형태로 변화시켜 보편적인 대중의 인식과 이해를 도모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하정우는 피에로를 통해 그의 감성을 재치 있게 담아냈다. 피에로 작품 이외에도 그동안 나무판 위에 오일크레용으로 인물의 구성요소를 단순화해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양식으로 재구성한 작품들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하정우는 지난해 기획초대 ‘Horizon of Passion’전(닥터박 갤러리), 하정우 초대전(동아일보 미디어센터)을 연 바 있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아트&컬렉터 발행인)의 평론(요약)을 통해 하정우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강민영 전문기자 mykang@sportsworldi.com

Fly me to the star, 2011. 캔버스에 혼합매체
◆ 전시 평론=하정우는 배우이기에 세 번씩이나 개인전과 그룹전 등에 작품을 발표해도 그는 오히려 작가라는 이름보다 배우로 더 주목 받는다. 그림을 잘 그려도, 또 열심히 그려도 작가이기 보다 배우로 먼저 불린다는 점에서 하정우는 많이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신인작가가 서너번 개인전을 가질 정도라면 당당한 작가로 대우 받겠지만 여전히 그는 그림을 그리는 스타로 먼저 평가 받는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불려짐에 어떠한 이의도, 아무런 내색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시선에 침묵한다. 다만 그는 그림을 정말 미친 듯이 그릴뿐이다. 이것이 하정우이다.

 과연 배우인 그에게 그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그림은 나의 피와 살이며 내 자식 같은 느낌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것은 세상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고 말이다. 

 그렇다. 그림은 하정우에게 온전히 자연적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보여준다. 그런 그의 배우 모습과 화가 모습을 나는 2년에 걸쳐 수시로 작업실을 들르며 지켜보았다. 갈 때마다 그의 작업실에 늘어나는 100호가 넘는 대작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실제 화가들 보다 훨씬 많은 작업량에 '혹 누가 대신 그려주나'하고 의심할 정도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가 미술대학 출신이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어떻게 처음 붓을 잡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러나 그러한 궁금증은 부친이신 탤런트 김용건 씨의 취미를 알면 아주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는 어린 시절 오치균, 박대성, 권순철 등을 비롯한 국내의 성격 있는 화가들의 작품을 컬렉션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림에 대해 친근감을 지녀왔다. 그런 아버지의 그림 수집 취미의 환경에서 성장한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어느 날, 그는 초조함에 무언가에 집중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모든 청년이 갖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그 때 그는 정말 막연하게 그림을 한 번 그려 봐야겠다는 아주 소박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배우가 되고 그는 외국촬영 중 시간 나면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전시를 보며 더욱 그림에 대해 깊숙하게 눈을 떴다. 어떤 때는 화가들을 주제로 한 바스키아나 폴락 등 영화에 탐닉했고, 그림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동료 들이 화집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지만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얻을 수가 없었다. 정규적으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그에게 미술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혼자 공부하고 독학했다. 거기서 그는 피카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는 피카소를 그의 가장 이상적인 영웅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작가가 되기를 열망했다. 또한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폴록이나 낙서화가 쟝 미쉘 바스키아를 동경했다. 그의 초기 그림들에서 피카소나 바스키아의 영향이 유독 많이 돋보이는 이유이다. 그 뿐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가졌던 감정을 드러낸다든가, 우연히 어떤 잡지에서 만난 사진 이미지, 길 가다 본 인상 깊은 풍경을 보면서 그는 인물들을 설정하고 이미지와 형태의 조합을 통하여 그림을 만들어 낸다.

 피카소나 폴록의 그림을 번안한 그림들이 있지만 그는 실제로 수백 장의 그림이 될 만한 모티브의 사진들을 손수 찍어 보관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하나하나의 의미와 사연을 갖고 있으며 후에 그림으로 태어난다.

 작년 주목을 받았던 영화 ‘황해’를 찍으면서 그는 어김없이 아크릴과 스틱으로 캔버스와 합판 위에 광대들을 모티브로 한 ‘피에로’ 시리즈를 시작 했다.

 이제 하정우에게 더 이상 그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취미가 아니라 그에게 영혼을 풀어내고 담아내는 하나의 의식이자 테라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이제 정규적인 미술대학에서 더 공부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또한 외국에서 레지던시를 하거나 유학을 가는 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단순히 배우라는 이름으로 대충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는 것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이번 ‘피에로 시리’는 그동안 나무판 위에 오일크레용으로 인물들을 단순화하여 의미 있는 숫자와 좋아하는 노래, 제목 등으로 구성한 작품들로 그의 내면 메시지를 엿보이게 한다. 우리는 특히 이번 광대 시리즈에 보다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두고자 한다. 일찍이 피카소나 샤갈 그리고 조르쥬 루오, 배르나르 뷔페 등은 이 피에로의 테마에 열광한 적이 있다.

 배우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자신들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며, 그들의 아픔과 고달픔은 피에로를 통해서 묻어난다. 그 피에로는 배우인 동시에 우리이기도 하다. 하정우의 작품에 나타나는 강렬한 색상과 간결한 선들이야말로 그 피에로의 특성과 명료함을 더해준다. 

 
wig?, 2011. 캔버스에 혼합매체
그 거침없는 작업태도는 느낌이 다가오면 주저하지 않고 작품으로 표출해내는 본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양식적인 면에서 평면적인 표현으로 원색적인 색채와 생략으로 화폭을 완성하는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 영향은 샤갈 작품에서 빨간색과 짙은 녹색을 섞어 쓴 유태인 할아버지 초상으로 보여진다. 그는 그 그림을 처음 보고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만약 하정우의 작품이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게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강렬한 색채와 함께 피에로인 배우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그가 가슴에서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구태여 욕심을 좀 부리자면 더 다양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원숙하게 보여준다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칠 줄 모르는 격정과 열망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업들에서 우리는 성공적인 피에로의 발견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글=김종근 미술평론가·아트앤컬렉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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