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부터 이어진 고민이 있었죠. 이 1년 사이 많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의 프로야구 도입 2년째, 낮게 떨어지는 궤적으로 존 끝자락을 공략하던 언더핸드 투수들은 대체로 힘을 잃었다. 기계는 냉철하다. 인간 심판이 놓쳤던, 애매한 영역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잠수함 불리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배경이다. 이 와중 올해 반등에 성공한 투수가 없는 건 아니다. 바로 KT의 에이스 고영표다.
직전 시즌 크게 흔들렸다. 고영표는 2024년 18경기서 6승8패 평균자책점 4.95(100이닝 55자책점)에 머물렀다. ‘고퀄스(고영표+퀄리티스타트)’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은 부진이었다.
25일 기준 통산 107개의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작성했으며, 스스로도 자부심이 깊은 기록이다. 특히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시즌 모두 나란히 QS 21차례를 마크하는 꾸준함까지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단 9개의 QS를 쓴 게 전부였다.

겨우내 구슬땀을 흘려가며 원인 분석에 나섰다. 코칭스태프는 물론, 전략데이터 부서의 도움까지 받았다. 문제를 찾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왜 안 되는가’를 넘어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답하기 위한 시간은 개막 후 정규리그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기술적인 조정에 온 힘을 쏟았다는 후문이다.
그간 제구실을 하지 못했던 결정구를 갈고닦았다. “작년이나 올 초엔 체인지업이 미리 떨어져 ABS 존에 걸치지 않았다. 화면상으로 낙폭이 괜찮아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 끝까지 길게 가져가야 존 하단에 걸리는데 그게 안 됐다”는 설명이다.
해법은 피치 터널(투수가 공을 던진 순간부터 타자가 구종을 구분할 수 있는 구간) 강화에서 찾았다. 결실을 거뒀다. 가능한 한 체인지업을 늦게 떨어뜨릴 수 있도록 피나는 훈련을 해왔고, 타자 입장에선 타이밍 맞추기가 까다로워졌다.


새 무기도 얹었다. 고영표가 올 시즌 던지고 있는 커터는 정대현 삼성 2군 감독의 현역 시절 커브를 연상케 한다. 이른바 ‘업슛’이라고 불리는, 밑에서 위로 떠오르는 변화구다. 의도된 볼 배합이다. 고영표는 “(위로 뜨는) 커터를 던지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기존 구종인 직구와 투심, 체인지업 등과 상반된 움직임을 갖게 됐다”며 “타자들이 생각할 게 많아졌다”고 미소 지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빚어낸 상승곡선이다. 지난해의 아쉬움을 털어내기 충분한 역투가 계속되고 있다. 고영표는 올 시즌 22경기 등판, 9승5패 평균자책점 2.92(129⅔이닝 42자책점)를 기록 중이다. QS는 17차례로 공동 3위, 토종 선발로는 1위다.
지난해부터 거듭 무거웠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낸다. “(QS는) 마땅히 해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선발투수라면 늘 마운드에서 6이닝 이상 안정적으로 던져야 한다”며 “그래야 팀이 이길 확률이 올라간다. 평균자책점과 탈삼진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목표는 항상 QS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막내 구단 창단 멤버로 시작, 어느덧 고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솔선수범해야 후배들도 따라온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다. 고영표는 “내 역할이 크다. 선발진이 안정돼야 불펜도 제 역할을 한다. 타자들도 투수가 잘 막아주면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면서 “(오)원석이와 (안)현민이가 워낙 잘해주고 있다. 동생들과 함께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