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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 풍경소리]윤보선 前대통령 부귀한 자손임에도 검소한 생활

입력 : 2009-06-08 21:03:00 수정 : 2009-06-08 2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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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 역학연구원장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검소한 생활을 한 대통령이 몇 분 있는데, 그 중에 윤보선 대통령도 포함된다.

조상이 큰 벼슬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집의 크기가 99칸을 넘지 않았으며, 집에서 쓰는 양은 주전자가 찌그러진 것을 그대로 사용할 정도였다.

윤보선(尹潽善,1897∼1990) 대통령은 충남 아산 출생으로 호는 해위(海葦),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부친인 윤치소와 어머니 이범숙씨 사이에 태어났다. 아내는 공덕귀(孔德貴)이며 2남 2녀를 두었다. 그는 조선 말기 개화파 인사인 윤치호의 종질이다.

윤보선 대통령은 일본 유학 후 중국 임시정부에서 활동을 하다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다. 영어에 능통한데다가 막강한 집안 배경으로 정치에 투신하기엔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8·15 해방이 되면서 미 군정청 농상국 고문직을 지냈으며 또 신생활 운동을 전개, 식량 배급 행정을 본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유령 인구와 매점매석 단속 등의 시책을 벌이기도 했다. 1949년에는 상공부장관이 되었다. 서울특별시장도 역임했다. 그는 1954년에 제3대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제4대, 제5대, 제6대 국회에도 진출하였다.

제1공화국의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정을 저질렀다. 결국 4·19 학생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고 1960년 6월 15일 헌법 제3차 개헌으로 의원내각제가 실시되었다.

1960년 민주당후보로 입후보하여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된다. 이 때를 우리나라 제2공화국이라 부른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순수 의원내각제를 실시하여 장면이 국무총리에 선출된다.

윤보선 대통령은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후 민주당 후보로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정변이 일어나자 1962년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5·16군사정변 이후 민주당정권이 붕괴되었으나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했지만 정변 주체세력과의 의견차이로 결국 1962년 3월 재임 1년 7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1963년 범야권 세력을 규합하여 군사 정변세력이 결성한 민주공화당에 맞서기 위해 민정당을 결성한 후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윤보선 대통령은 반체제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1990년 안국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선산을 가보면 명당 중의 명당에 번듯한 묘비 하나 없다.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사)한국역술인협회 중앙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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