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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화가' 고 원석연 추모전, 연필 하나로 담아낸 일곱색깔 울림

입력 : 2008-11-03 14:23:58 수정 : 2008-11-03 14: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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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간 소묘가 외길
5일부터 갤러리 아트사이트
개미
“청렴하고 가난한 화가였어요.”

 ‘개미화가’로 유명한 원석연(1922∼2003)  5주기 추모전을 앞두고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기자들과 만난 미망인 윤성희 여사는 6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이렇게 회고했다. 

 윤 여사는 “남편은 못생기고 괴퍅하고 가난했지만 너무나 곧고 맑았다”며 “가정을 아주 아끼고 사랑했다”고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원 화백은 60여년 동안 연필화를 그려온 작가로 유명하다. 기인으로 불릴 정도로 괴퍅스러운 성격 탓에 언제나 제도권 밖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그는 고독했고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소묘가로서 일가를 이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그는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국전에 출품해 실력을 인정받았다면 인기 작가로서 부와 명예를 얻었을지도 모를 터. 남들이 주목받기 위해 안달을 할수록 그는 오히려 철저하게 제도권을 외면했다. 고립을 자초한 채 외골수로 연필그림 창작에만 매달린 것이다.  

 
마늘
일화 한 토막. 초상화를 의뢰받은 그는 초상화 주인이 수정을 요구하자 찟어서 던져버렸다. ‘작가에게 그려달라고 해 작가가 그렸으면 끝이지 왜 수정을 요구하느냐’는 것. 전시회가 끝나고 인터뷰를 요청해도 거부하기 일쑤였다. 전시를 했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황해도 태생인 원 화백은 일본 가와바타에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다. 해방 직후 연필의 매력에 빠져 연필화를 그리기 시작해 죽기 전까지 연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물감을 사용해 그린 그림이 한 점도 없는 걸 보면 그가 연필화에 얼마나 푹 빠져 살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는 평소 “연필에는 소리(音)와 색(色)과 기(氣)가 있다”며 “나는 연필 하나로 일곱가지 색깔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연필화는 단순한 무채색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는 작가노트에 “나는 연필로 사물의 이면에 흐르는 생명의 맥박과 울림을 연필 선으로 포착하고자 했다”고 썼다.  

 
굴비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극사실적인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원석연 5주기 추모전이 11월 5∼16일 인사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열린다.

 그가 많이 그린 개미, 마늘, 굴비, 시골집 풍경 등 유작 100여점이 선보인다. 수많은 개미떼를 그린 ‘개미’ 시리즈(1973년), 박대통령 생가 ‘초가집’(1969년), 3개월 동안 석굴암에 머무르며 그린 ‘문수보살’(1959년) 등은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정밀한 세밀묘사가 특징. 새끼줄에 엮어진 ‘굴비’에선 고단한 삶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생전에 개인전을 37회 가졌고 작고 후 2004년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추모 1주기전이 열린 바 있다. (02)725-1020 

스포츠월드 강민영 기자 mykang@sportsworldi.com 사진제공=갤러리 아트사이드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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