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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9 04:40:00, 수정 2017-03-29 04:40:00

[차길진과 세상만사] 92. 청와대 불상으로 곤욕을 치른 대통령

  • 북악산은 혈을 2개 만든다. 그 좌우를 낙산과 인왕산이 청룡과 백호로 옹위하는 형세다. 북악의 백호인 인왕산은 무악재에서 절맥을 이뤘다가 안산에 닿는다. 그중 남서쪽으로 뻗은 가지가 모래내를 따라 연회고지를 거쳐 와우산에 이르는 긴 줄기를 만들고 있다. 그 안에 연희동이 포함돼 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물이 흐른다고(背山臨水) 무조건 명당은 아니다. 지세는 60세를 넘기면 칼끝을 거꾸로 꽂는 터다.

    그럼에도 전두환이 천수를 누리고 있는 것은 청남대 덕분이다.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이 빼어난 주변 환경에 반해 지은 대통령 전용 별장이다. 옥새, 월출, 소위, 작두봉 등 주변 산 4개와 대청호가 알을 품듯 청남대를 안고 있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1000년 뒤 물이 차고, 용이 물을 만나 승천하듯 국토의 중심이요, 연화정수의 성지가 이룩돼 국왕이 머물 지형”이라고 일찌감치 내다본 곳이기도 하다. 청와대의 날카로운 손톱이 할퀸 상처를 상쇄시키는 작용을 다 해온 선량한 땅이다. 현재 청남대는 일반에 개방되고 있지만 숨겨두는 편이 청와대 주인에게는 더 나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스타일이 달랐다. 김영삼 대통령은 행동한 뒤 생각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생각하고 행동했다. 경복궁 앞을 가로막고 있던 조선총독부를 1995년에 헐어버린 것이 단적인 예다. 이리저리 따지다보면 실기(失期)하고 실기(失機)하기 딱 좋다.

    조선총독부 철거는 일제의 잔재를 제거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결단이었다. 아픈 역사도 역사라며 일부 학자들이 반대했지만, 김영삼은 “무신 씰 데 없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총독관사 건물의 ‘대(大)’자 모양, 총독부 청사건물의 ‘일(日)’자 모양, 서울시청건물의 ‘본(本)’자 모양, 이 셋을 합하면 ‘대일본(大日本)’이 된다. 김영삼은 이 요망한 글자들을 우리 역사에서 지운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터’다. 건물을 허문다고 지기(地氣)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김영삼은 1993년 11월, 옛 청와대 건물도 없앴다. 현 수궁터 자리에 있던 건물이다.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되살린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듬해 김영삼은 청와대 뒷산의 불상으로 곤욕을 치렀다.

    1994년에는 대한항공기 화재, 서울 파레스룸살롱 화재,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유람선 화재 등 사고가 잇달았다. 또 인천과 부천의 세무공무원들은 도세(盜稅) 사건을 저질렀고, 군에서는 하극상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이 같은 대형 사건사고의 배경에 바로 이 불상이 있다는 루머 탓에 김영삼은 괴로웠다. 기독교 장로인 김영삼이 문제의 불상을 치워버리면서 나라에 흉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진다는 소문이었다.

    국내는 물론, 호주의 신문까지 나서서 ‘부처님이 노했다’는 소설성 기사를 실을 지경이기도 했다. 이 신문은 “김 대통령은 취임 후 곧바로 불상을 치우게 했다. 그러다가 성수대교 사고를 ‘덕이 부족한 탓’으로 돌린 김 대통령은 이 불상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었다.

    사실 불상을 옮긴 이는 김영삼이 아니라 노태우였다. 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본래 있던 자리에서 100m쯤 올라간 곳으로 불상을 이전했다. 노태우의 모친은 이따금씩 찾아와 불상에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미남 불(佛)’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하는 여래좌상은 높이 110㎝에 풍만하고 근엄한 얼굴, 당당한 체구 등으로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케 한다. 본래부터 청와대에 있던 것이 아니다. 경주 도지동의 유덕사 자리에서 출토된 불상이 경주 남산을 여행하던 데라우치 총독에 눈에 띄어 남산 왜정대 총독관저로 갔다가, 1927년 현 청와대 터에 총독부 관저를 지으면서 불상도 옮겨왔다.

    불상의 존재를 새삼 깨달은 김영삼 대통령은 불상의 위치까지 바로잡으며 지기(地氣)를 달랬고,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불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청와대가 아닌 엉뚱한 곳을 향해 있던 불상의 얼굴을 청와대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것으로 청와대 터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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