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읽고, 귀를 기울여서 듣는 과정 자체가 우리가 가진 희망을 증거한다.”
소설가 한강(54)은 12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출판사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관련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글을 쓰는 의미를 되짚은 수상 소감과 함께 대표작 ‘소년이 온다’가 역사를 이해하는 ‘진입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밝혔다.
한 작가는 먼저 6시간에 걸친 노벨상 시상식과 연회에 참석한 것에 대해 “이 행사를 위해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다고 들었다. 많은 사람이 정성을 들여 준비한 행사라고 생각하며 지켜보는 마음으로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작들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처음 전해졌던 10월10일 이후 국내외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리며 독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날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를 통해 역사를 이해하길 바랐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목숨을 잃은 중학생 등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는)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만큼 더 조심스러웠다”며 “이 책이 광주를 이해하는 데 어떤 진입로 같은 것이 돼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일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도 “인간이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대표작 중 어떤 작품을 먼저 읽으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에는 “한국 독자에게는 처음이 소년이 온다가 좋을 것 같고, 이 책과 연결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어서 읽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너무 진한 책보다 조금 성근 책을 원한다면 ‘흰’이나 ‘희랍어 시간’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채식주의자’는 처음부터 읽기보다 다른 책을 읽은 뒤에 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두운 역사와 폭력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무력감은 어떻게 극복하는가’란 질문에는 “글을 쓰려면 최소한의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 작가는 “이 언어가 연결될 것이란 믿음이 없다면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거 자체가 아주 미약한 믿음이라도 믿음을 근거로 한다”며 “결국은 우리가 이렇게 말을 건네고, 글을 쓰고, 우리가 읽고 귀 기울여서 듣고 이런 과정 자체가 결국은 우리가 가진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강연문을 쓰면서 제 과거를 많이 돌아보게 됐고, 내가 어디쯤 있고 어디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는지 나의 ‘좌표’를 파악하게 됐다”며 “여태까지도 늘 써왔는데 앞으로 글을 쓰는 게 어려워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돼서 계속 쓰던 대로 쓰려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제게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이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3부작이 있는데, 그 마지막으로 쓰기 시작했던 글이 결도 달라지고 분량도 길어져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가 됐다. 그래서 3부작을 마무리하는 소설을 이번 겨울까지 쓰려했는데 (노벨상 수상으로) 준비할 일이 많아 늦춰졌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2018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작별’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을 써서 3부작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집필 과정에서 방향이 달라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장편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된다고 말씀드렸던 책도 다음에 써야 한다”고 했다. 앞서 작가는 7일 강연에서 세상을 일찍 떠난 자신의 언니를 다룬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강은 11일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124회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지 왕립극장에서 열리는 대담 행사를 끝으로 노벨상 일정을 마친다.
신정원 기자 garden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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