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대형마트 브랜드 트레이더 조에서 냉동김밥이 완판되고, 영국인 래퍼가 ‘신라면 키링’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 글로벌 아티스트 카디 비는 자신의 피부관리 비결로 한국의 머드팩을 꼽았다.
뉴진스가 광고하는 빼빼로를 한가득 사가고, 블랙핑크 로제가 연습생 시절 생일축하를 위해 만든 ‘롯데 초코파이 케이크’를 따라 해본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
음식, 뷰티, 여행, 음악·문화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는 세계인에게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요소로 떠올랐다.
과거의 한류는 서브컬처나 마이너 문화로 분류됐던 게 사실이다. 한류가 진화한 지금의 K컬처는 국가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는 소프트파워로 작용하고 있다. 과장하자면 ‘두유노 김치?’라고 한국 문화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될 정도다.
한국은 글로벌 사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치열하게 살면서 누구보다 모범생 같은 국민성을 자랑하는데, 만드는 문화는 엄청나게 흥미롭다. 이를 증명하듯 한국은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꼽힌다. IMF(국제통화기금)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연구보고서 ‘소프트파워 측정: 새 글로벌 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소프트파워지수는 1.68점으로 가장 높았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과 경제력 같은 물리적 힘을 의미하는 하드파워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말 그대로 문화, 가치, 정책 등을 통해 타국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다. 하드파워가 한 국가의 강력함을 증명한다면, 소프트파워는 국가의 이미지를 조형하고 세계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핵심 요소다.
특히 요즘처럼 국제 여론과 상호 의존성이 중요한 시대에는 소프트파워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경제 협력, 해외 투자, 국가 이미지 형성 등은 하드파워로만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K-컬처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BTS가 미국에서 떠오르며 한국 아이돌 문화가 급격히 확산했다. 시즌 2로 돌아온 ‘오징어 게임’ 같은 문화 콘텐츠 역시 하나의 신드롬이 됐다. 한국인이 즐기는 일상 속 간식도 도전해보고 싶은 음식으로 떠올랐다. 단순 유행을 넘어 경제적, 외교적 기회를 만들어내는 자산이 된 셈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 위기와 국내 정세는 한국의 이런 강점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최근 계엄 사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모두 탄핵당한 초유의 ‘대대행 체제’ 등과 같은 정치적 불안정성은 주변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시선을 차갑게 만들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해 말 최근의 정치적 위기로 그동안 문화와 경제적 성공 덕분에 개선돼 온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세계적 호감도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파워는 국가의 전반적인 안정성과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고, 국제적 신뢰가 흔들린다면 K-컬처가 만들어낸 투자와 해외 진출의 기회가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변화는 분명 부담감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지금까지 성과를 만들어온 방식은 단순히 하드파워나 소프트파워 중 하나에 의존하는 게 아니었다. 두 힘의 균형을 통해 성장해왔다.
당장 현재 상황이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보여주는 것 자체로 평판이 개선될 수 있다. 예컨대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흔들며 목소리를 내는 젠지 세대들의 새롭고 성숙해진 시위 문화가 하나의 긍정적인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지금의 위기는 이런 균형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강화할 수 있는 기회다.
정희원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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