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마음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터전’을 옮긴다는 건 생사가 걸린 일입니다.”
연고 이전은 흔히 프로스포츠에서 부정적인 키워드로 통한다.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엔 ‘반대’부터 시작해 ‘시위’, ‘배신’ 같은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하지만 단순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도 있다.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과 남자프로농구 KT, KCC는 연고지 이전이라는 구단의 생사를 건 선택을 했다. 하지만 구단의 노력으로 오히려 새로 이사한 안방에 안착해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의 공통분모다. 구단과 지자체의 의기투합, 그리고 경쾌한 시너지다.
구단들은 연고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펼친다. 연고지 팬으로부터 외면받는 구단은 존재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계약서 한 장으로 이어지거나 끝나버린다. 셋방살이하듯 계약이 종료된 후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사를 가야 한다.

여자농구 강자 우리은행 역시 과감한 결단을 내린 바 있다. 수많은 우승을 일궈낸 강원도 춘천에서의 여정을 마친 뒤 2016년 충남 아산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아산시의 적극적인 구애와 지원이 구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아산은 “시를 상징하는 이순신 장군이 100원 동전에 새겨져 있다”며 “이에 체육관 대관료를 100원으로 책정하겠다”고 파격 제안을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체육관 대관료가 지금도 연간 100원”이라며 “지자체의 전폭적인 배려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광판 개보수는 물론, 음향시설 수리도 지자체에서 앞장선다.
모기업인 우리은행도 상생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른바 윈-윈(Win-Win) 모범 사례다.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또 프로축구 K리그2 소속 시민구단 충남 아산FC의 프리미엄 스폰서다. 앞 관계자는 “농구단은 시의 협조 속에서 매 시즌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거기에 발맞춰 지역사회 발전을 목표로 돕는 게 당연하다. 축구단 후원도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역 유소년 농구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남자농구에선 KT와 KCC가 최근 본거지를 옮긴 바 있다. 먼저 KT는 2021년 부산을 떠나 경기도 수원에 정착했다. 프로농구연맹(KBL)의 연고지 정착제가 도입되면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 가운데 수원시의 전천후 협조 덕분에 더 수월한 연착륙이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구단 관계자는 “홈과 훈련장이 같은 도시에 있고, 시와 소통도 원활해 선수단 컨디션과 경기력 조율은 물론, 행정 협조 모두 수월하다”고 말했다. KT는 수원 화성을 모티브로 한 특화 좌석, 연고지를 공유 중인 야구단과의 협업을 더해 새 색깔을 입혀 나가고 있다.

주인 잃은 부산엔 KCC가 2023년 새 둥지를 틀었다. 전북 전주에서 이동한 지도 어느덧 2년 차다. 구단에선 “순항 중”이라고 외친다. 더불어 “(부산시에서) 잘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원을 많이 받는 만큼 한결 편안한 게 있다”고 웃는다. 입성 첫 시즌 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다만 이듬해 정규리그 9위 및 플레이오프(PO) 탈락 등 아쉬운 성적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떠나고 싶어 떠난 건 아니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고 이전은 구단의 선택이기 이전에, 어쩔 수 없는 구조적 결과다. 경기장 소유권은 없고, 지자체의 노력과 협조 없이는 운영조차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고민 끝에 택한 돌파구다.
구슬프게도, 단지 지역 팬의 사랑만으로 팀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새 연고지를 찾는 팀들의 명분은 ‘생존’이다.
구단이 자리를 떠날 때마다 팬들은 “왜 떠나느냐”고 묻는다. 이제는 지자체를 향해 질문을 던질 차례다. “왜 붙잡지 못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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