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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의 연예It수다] tvN→SBS, 이어진 PD 성추문…방송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입력 : 2025-11-18 11:28:05 수정 : 2025-11-18 14: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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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방송가 성추문
법정 교육만으론 충분치 않아...바뀔 것은 제도가 아닌 우리 의지

tvN 예능 프로그램 연출 PD가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데 이어, SBS 교양본부 PD까지 성희롱으로 해고되면서 방송계의 고질병이 또다시 드러났다. 이번 사건들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범죄 예방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에는 MBC는 경남에서 촬영 중이던 드라마 제작진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한 성희롱 및 성매매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해당 드라마를 연출하던 20년 경력의 부장급 PD가 성추행 의혹으로 해고 조치됐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모든 사업장에 연 1회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방송사들 역시 매년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이수율을 관리한다. 그러나 MBC 사례는 법정 교육이 실질적 예방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교육의 형식성이다. 한 시간짜리 온라인 강의를 틀어놓거나, 집합교육에서도 집중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는 교육 내용과 제작 현장의 권력 구조 사이의 괴리가 크다. 프리랜서 신분의 제작진이 연출자의 부적절한 행동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2024년 춘천지법은 선배 PD로부터 장기간 성추행과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했다. 가해자에게 5300만원, 방송사에 32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었다. 피해자는 2022년 퇴사 후 소송을 제기해 2년을 기다렸고, 그 사이 PTSD와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피해자가 내부 신고 대신 퇴사 후 사법적 해결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재판 후 피해자는 변호인을 통해 “신고만 하면 방송국에서 보호해줄 거란 생각이 틀렸다”고 밝혔다. tvN 사건 피해자 역시 성추행을 거부한 뒤 닷새 만에 프로그램에서 하차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가해자의 역고소도 반복되는 패턴이다. 춘천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가 PD협회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며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으나, 피해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2차 가해는 다른 잠재적 피해자들의 신고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2021년 MBC노동조합은 “솜방망이 처벌로 넘어간다면 비위 행위는 끝없이 반복될 것”이라며 일벌백계를 촉구했다. 그러나 2024년 SBS와 tvN에서 유사한 사건이 재발했다. 방송사들은 매번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징계 이후 추적 관리 역시 미흡하다. 해고나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이들이 실제로 방송계를 떠났는지,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투명한 징계 결과 공개와 사후 관리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 문제는 방송계만의 것이 아니다. 위계적 조직문화, 프리랜서 중심의 고용 구조, 성과 중심주의는 많은 업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방송계 사례는 우리 사회의 성범죄 예방 시스템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실효성 있는 변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예방교육을 단순 이수 대상이 아닌 조직문화 개선의 계기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내부 신고자에 대한 실질적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셋째, 징계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권력 구조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연출자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프리랜서 제작진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며, 성과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 용기를 내야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조직은 이미 실패한 조직이다.

 

춘천 사건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자의 용기가 아니라, 용기가 필요 없는 안전한 일터다. 법정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짜 바뀌어야 할 것은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작동시키는 우리의 의지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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