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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체전 4연패의 주인공 '가을여자'가 나고야를 향해 뛴다...육상 이은빈 "11초59를 넘어"

입력 : 2025-12-03 18:30:09 수정 : 2025-12-03 18: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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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서진 기자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밀려드는 긴장감을 잊으려 손바닥을 펼쳐 몸이 빨개질 정도로 때린다. 하지만 트랙 위에 준비 자세를 취하면 언제 그랬냐는 순간 몰입한다. 이후론 그저 즐길 뿐이다. 트랙 위 ‘가을 여자’라 불리는, 한국 여자 육상 단거리 유망주 이은빈(해남군청)의 이야기다.

 

 적수가 없는 한 해를 보냈다. 올해 처음 실업 무대에 발을 내디딘 이은빈은 2025시즌을 5관왕으로 마무리했다. 국내 주요 대회에서 연이어 정상에 오르며 단거리 부문을 평정했다. 구미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강다슬, 김소은, 김다은과 함께 출전한 여자 400m 계주서 44초45의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며 국제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지막 여정인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도 여자 일반부 100m 결선에서 11초91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무려 전국체전 4연패 달성이다.

 

 한 시즌을 바쁘게 마무리한 뒤 만난 이은빈은 “성인 무대는 정말 색달랐다”며 “이전에도 겨뤄본 적은 있었지만, 동 나이대의 선수로 만나는 건 왠지 긴장되더라. 기에 눌리기도 했다. 다행히 구미대회 때 언니들이랑 같이 훈련하면서 친해졌고, 그러면서 성인 무대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개인적으로 올 시즌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사진=윈윈 스포츠 컴퍼니 제공

◆운동회 1등 소녀, 한국 단거리 에이스가 되다

 초등학생 시절, 운동회서 계주에 나갔다 하면 1등을 차지했던 소녀였다.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전남 무안군 학년별 육상대회에 나섰다. 첫 대회 성적은 2등. 매번 1등을 하던 소녀에게 자신보다 앞서는 사실은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의욕이 불타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전남체중에서 본격적으로 육상을 배우기 시작하며 선수의 길을 걸었다.

 

 승승장구했다. 전남체중 1학년 때 소년체전에서 1등을 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쭉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차세대 여자 육상 단거리 주역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전남체고에 진학하며 한 단계 더 높은 무대에 발을 딛자, 거짓말처럼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문제는 슬럼프였다.

 

 이은빈은 “중교에서 고교 무대로 넘어갈 때가 성인 무대에 적응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다”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슬럼프가 이어졌다. 어느 날 은사님이 ‘아예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하시더라. 그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컨디션도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자신감이 생긴 배경이다. 이은빈은 “긴장감도, 슬럼프도 이겨낸 경험이 있지 않나”라며 “그 자신감 위에 경험과 기량을 더 쌓아 2026년도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자신 있게 방긋 웃었다.

여고부 당시 이은빈(왼쪽). 사진=대한육상연맹 제공

◆가을만 되면 힘이 나는 가을여자

 팬들은 이은빈을 ‘가을 여자’라 부른다. 유독 가을만 되면 컨디션이 크게 오르기 때문. 실제로 카페 스타벅스 닉네임도 가을 여자로 설정해놨다. 이은빈은 “신기하게도 가을만 되면 몸이 좋다”며 “팬분들이 ‘이은빈은 가을에 올라올 거니까’라고 해주시면서 지어준 별명이다. 마음에 든다”고 미소 지었다.

 

 가을여자에겐 아주 화끈한 루틴이 있다. 긴장도가 유독 높은 편인 이은빈은 경기장에 들어서면 몸이 경직되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손을 떠는 날도 있다. 긴장감을 털어내기 위해 머리카락을 귀 뒤로 한 번씩 넘긴 뒤 상체 2번, 하체 2번을 손바닥으로 때린다. 너무 강하게 때려 멍이 드는 날도 있다. 이은빈은 “긴장도가 너무 심해서 답답하지만, 출발선에 서서 스타트를 기다리는 순간엔 긴장감이 잊혀진다”며 “그 순간만큼은 ‘천직인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껄껄 웃었다.

사진=최서진 기자

◆아시안게임을 향한 질주

 사실 올 시즌 이은빈의 목표는 11초59였다. 지난해 전국체전 18세 이하부에 출전해 11초76을 기록, 대회 신기록이자 개인 최고 기록으로 우승한 바 있다. 올해 전국체전 예선에서 11초82를 뛰면서 목표 기록 달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악조건이 이어지면서 기록 경신에 실패했다.

 

 이은빈은 “9월 말까지 발등이 아파서 훈련을 제대로 못 했다. 이후 운동을 하는 데도 컨디션이 잘 안 올랐다. 아리송한 느낌이었다. 대회 당일에 날씨가 추워서 오금까지 아팠다. 확 부상이 와서 걱정이 더욱 커졌다”면서도 “예선에서 생각보다 기록이 좋게 나왔다. 결승에서 기대했는데, 트랙 컨디션도 안 좋고 날씨도 안 좋아서 기록 경신은 못 했다. 그래도 전국체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4연패를 한 건 너무 큰 영광”이라고 활짝 웃었다. 

사진=윈윈 스포츠 컴퍼니 제공

 국제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내년 일본에서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이 열린다. 하지만 이은빈은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여유를 드러냈다. 이유가 있다. 이번 AG는 9월 시작해 10월에 끝난다. 가을이 오는 시점이다. 아직 AG행 티켓을 따낸 건 아니나, 이은빈은 국가대표로 진천 선수촌에 입촌해 강화훈련을 하는 등 AG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은빈은 “꼭 선발돼서 AG에 가고 싶다. 사실 긴장이 많이 될 것 같지만, 설레임이 더 크다. 큰 국제 대회는 웅장함이 다르지 않나. 분명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면서 “올해 이루지 못한 11초59도 반드시 깨고 싶다. 훈련할 때는 기록이 나오는데 대회에선 안 나온다. 꼭 깨고 말겠다”고 힘줘 말했다.

 

 동기 부여와 함께 의지가 넘쳐난다. 이은빈은 소속 에이전시 윈윈 스포츠 컴퍼니의 정종선 대표와 내기를 했다. 기록을 경신하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콘서트 티켓을 구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는 “대표님만 믿는다. 좋은 자리로 직접 피케팅(피 튀기는 티켓팅)해서 구해주시겠다고 했다”며 “꼭 기록 경신해서 좋아하는 세븐틴을 보러 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최서진 기자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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