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이자 시인인 오광록 롤모델로 삼아 연기
25일 개봉하는 영화 ‘은교’를 위해 처음 특수분장에, 자신의 나이보다 두 배 이상 되는 연령대의 남자 연기에 도전한 박해일이다.
이 영화에서 사랑에 빠지는 국민 노시인 이적요를 맡아 열연한 박해일은 수줍게 고백했다. 이미 지난 2월 중순 모든 촬영은 끝났지만 박해일의 고백대로 아직 이적요와 박해일의 중간이었다. 연기자가 여전히 역할에 빠져 있다는 것은 몰입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연기는 단순히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아를 유지하면서 캐릭터와 비슷한 부분을 뽑아내는 것이기에. 노인 연기는 그래서 더욱 어렵다. 단순히 코믹한 노인 캐릭터라면 어느 정도 훈련 끝에 자연스레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이적요처럼 국민 노시인에 깊은 내면을 지닌 인물이라면 정말 어렵기 그지 없다.
“특수분장만 따져도 처음 테스트 때 14시간이 걸렸죠. 여러 테스트를 거쳐 특수분장이 결정됐죠.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특수분장은 재밌는 작업이었다고 생각돼요. 원작은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이미 읽어봤어요. 원작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부담이 컸죠. 원작자이신 박범신 선생님이 살아오신 감성과 경험들이 많이 포함된 캐릭터이니 머리 속으로는 이해해도 심정적으로는…”
“제가 시인 이적요를 생각하면서 배우가 노시인 역할을 해야하는 거니까요. 인물을 떠올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연출을 맡은 정지우 감독님부터 촬영 전 만나뵌 박범신 선생님까지 떠올려봤죠. 그럼에도 시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오광록 선배님이셨어요. 배우로서도 대선배시지만 실제 시인이시기도 하거든요.”
그러면서 오광록의 말투를 흉내내는데 흡사했다. 실제 오광록이 함께 연극을 하던 시절 시를 낭독하는 모습에서 문학을 느껴봤다는 박해일. 어쨌든 원작자도 만나고 촬영장에서는 정지우 감독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이적요란 인물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특수분장뿐만 아니라 은교가 봤을 때 시적 감수성을 지닌 인물이어야 하고 은교의 말에도 잘 귀기울여주는 할아버지이기도 했죠. 어쨌든 겉모습만큼이나 내면의 감성을 드러내야 했는데 이게 이적요란 인물이 보여줄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죠.”
‘은교’는 이젠 모든 걸 갖췄지만 젊음이란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린 노인, 성공한 듯 보이지만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남성, 외롭기 그지없는 소녀가 만나는 이야기다. 노시인 이적요와 제자이자 베스트셀러 소설가 서지우, 그 가운데 끼게 된 여고생 은교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적요를 맡아 연기한 박해일로서는 연기를 떠나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다를 수 있다.
“영화 촬영 내내 운동을 못했어요. 왠지 다칠 것 같고 뛰기보단 걷고 걷기보단 서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나마 상상하는 장면에서 젊은 시절의 이적요가 돼서 은교와 뛰어다녀요. 여기서 저나 감독님도 놀랄만한 표정이 나왔죠. 영화 촬영 전체에서 처음 뛰는 장면인데 그 때의 표정을 보고 감독님께서도 ‘그런 표정도 있었어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분장 때문이었는지 이런 게 청춘이구나 하고 느꼈던 장면이었죠. 영화 끝나고서도 가족들이 나이 드는 것은 생각해봤지만 나 스스로가 늙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그냥 노인을 노인처럼 대하기보다는 좀 더 예를 갖추되 유연해져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인터뷰 자체가 노시인을 만나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이적요와 박해일의 중간 정도가 지금’이라던 박해일. 배우로서도 색다른 경험이었을 이번 작품으로 대중은 박해일의 또 다른 이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글 한준호 기자, 사진 김재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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