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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벽:김용준 프로의 골프볼 이야기] 골프여 영원하라!

입력 : 2018-12-26 13:38:05 수정 : 2018-12-26 13: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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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규칙에 관하여 <5편>

 

대자연 속에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힘으로 볼을 있는 그대로 규칙을 지키며 치는 것이 골프다. 새 규칙은 이 뿌리와 줄기를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새 규칙에서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은 있다. 바로 코스는 있는 그대로 플레이 한다는 대원칙이다. 스윙하기 고약하다고 뭔가를 꺾거나 밟아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행동은 이전에나 앞으로나 벌타를 받는다.

 

또 볼은 놓인 그대로 쳐야 한다는 원칙도 그대로다. 규칙이 허용하는 예외를 빼곤 말이다. 볼을 움직여서 개선했다면 새 규칙에서도 벌타다.

 

움직이는 볼 방향을 일부러 바꾸거나(예를 들면 경계 밖으로 나갈 볼을 몸으로 막는 경우) 멈추게 하면 (예를 들어 페널티 구역에 빠질 볼을 발로 막아주는 것) 새 규칙으로도 벌타를 받는다. 중요한 상황이라면 단방에 실격 시킬 수도 있다.

 

규칙이 바뀐 덕에 벙커에서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벙커는 벙커다. 새 규칙으로는 볼에서 멀리 있는 발자국을 정리해도 벌타가 없다. 클럽을 모래에 꽂은 채 기대도 되고. 벙커 속에서 낙엽이나 나뭇가지 따위(루스 임페디먼트라고 부른다)를 치워도 된다. 옛 규칙에서는 손대기만 해도 벌타였는데. 그렇다고 새 규칙상 벙커에서 볼 앞이나 뒤에 클럽을 대도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벙커로 볼을 보낸 그 직전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있다.

 

새 규칙은 클럽 등을 바닥에 내려놓고 정렬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내려 놓고 서는 순간 벌타다. 옛 규칙은 그런 채로 스트로크를 해야만 벌타였는데. 새 규칙은 선수가 잘 섰는지 캐디가 뒤에 서서 봐주는 것도 금지한다. 퍼팅 그린에서만 예외다. 퍼팅 그린이라고 완전히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퍼팅 그린에서는 정렬하는 것을 봐줬더라도 스트로크 하기 전에 플레이어가 스탠스를 다시 풀면 벌을 받지 않는다. 플레이어 자신이 정렬하는 것이 골프의 본질에 맞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생긴 조항들이다.

 

새 규칙은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포용력을 갖고 있다. 새 규칙에 ‘우연히’라는 구절이 유난히 자주 나오는 데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다면 되도록 벌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새 규칙으로는 내가 친 볼에 나 자신이나 내 캐디 혹은 나와 같은 편이 맞아도 벌타가 없다. 물론 우연일 때 얘기다. 옛 규칙으로는 우연히든 고의든 무조건 벌타다. 새 규칙상 퍼팅 그린에서 우연히 볼을 움직여도 벌 없이 제자리에 갖다 놓고 치면 되는 것도 같은 취지다.

 

코스를 제멋대로 바꿨더라도 실수를 알아차리고 제자리로 돌려놓기만 하면 벌타를 취소한다는 새 규정에서도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모르고 무심결에 경계 말뚝(흔히 말하는 오비 말뚝)을 뺐더라도 다시 꽂아 놓으면 벌타가 없다. 물론 치기 전이다. 친 다음에는 사후약방문이다. 옛 규칙은 빼는 순간 이미 벌타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해 규칙 본문(1~24조)에 명기한 것도 골프 본질을 지키려는 노력이라고 나는 본다. 옛 규칙에서는 에티켓이라고 첫 장에 있었다. 당시에는 본문(옛 규칙 1~34조)에 없다 보니 ‘규칙인 듯 규칙이 아닌 듯’ 무게감이 적었다.  지금은 플레이어 행동에 대해 위원회가 규정을 따로 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부당하게 늑장을 부린다고 치자. 전에는 벌타를 줄 근거가 없었다. 차라리 실격은 시킬 수 있었어도. 새 규칙은 위원회가 미리 그런 행동에 대해 벌타를 정할 수 있다. 욕설을 하는 등 예의 없는 행동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실격 아니면 다른 길이 없었다. 실격 시키자니 너무 과한 것 갖고 놔 두자니 괘씸한 상황이 많았다. 이제는 미리 정해 벌타를 줄 수 있다.

 

여담이지만 혹시 새 규칙이 디봇을 구제해 줄 것으로 기대했는가? 벙커에 있는 발자국에 빠진 것도 모래를 고르고 좋은 자리에 놓고 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예상했는가? 그랬다면 서운할 것이다. 새 규칙도 여전히 이 두 상황은 구제하지 않는다. 나는 솔직히 기대도 안 했다. 어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 두 곳이 좀 점잖은 단체인가. 차마 보수적이라는 말은 쓰지 않으니 이해하기 바란다. 안 봐줄 것으로 예상하기는 했지만 두 단체 뜻만은 이해한다. 골프를 여전히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스포츠로 남기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잡힐 듯 잡히지 않아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력을 가진 그 골프로 말이다. 드디어 새 규칙으로 플레이 해야 할 시간이 왔다. 골프여 영원하라!

 

김용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경기위원 겸 엑스페론골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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