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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대동경소녀’→‘유학소녀’, 격세지감 K팝

입력 : 2019-05-27 06:05:00 수정 : 2019-05-27 07: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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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 새 예능프로그램 ‘유학소녀’가 지난 23일 첫 방영됐다. K팝에 관심 많은 해외 9개국 10명의 소녀들이 한국으로 K팝 유학을 와 벌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1화 시청률은 0.5%(AGB닐슨)로 웬만한 아이돌그룹 단독리얼리티 수준이지만, 반응이 상당히 좋다. 1화 방영 직후 각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이후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호평이 자자하다. 향후 치고 올라갈 여지가 많다.

 

그런데 ‘유학소녀’ 기획엔 의외로 꽤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 특히 M.net 입장에서다. 같은 M.net에서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시작을 알린 프로그램, ‘대동경소녀’로부터 딱 10년 뒤 등장한 프로그램이란 점이다. 심지어 첫 방영일조차 의도라도 한 듯 ‘대동경소녀’ 5월22일, ‘유학소녀’ 5월23일로 사실상 같다. 그러니까 ‘정확히 10년’인 셈이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 정말로 강산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대동경소녀’는 엄밀히 말해 유학을 ‘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걸그룹 모닝구무스메로 잘 알려진 일본연예기획사 업프론트 프로모션과 M.net이 합작,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15명의 한국소녀들 중 업프론트 프로모션 연수생을 뽑는 기획이었다. 데뷔도 아니라 한국으로 치면 연습생을 뽑겠단 기획. 프로그램을 보면 업프론트 프로모션 소속 일본아이돌이 자신들 노래를 부를 참가자들에게 퍼포먼스 팁도 알려주고, 참가자들이 직접 일본에 가 일본인 보이스코치에게서 트레이닝도 받는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런데 당시엔 그런 설정이 딱히 어색하질 않았다. 당시만 해도 아이돌이란 상품개념의 메카는 일본이라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 제목 ‘대동경소녀 對東京少女’에서 일본발음 ‘도쿄’로 통일돼 불리는 ‘東京’을 굳이 ‘동경’이라 표기한 이유가 있다. 동음이의 단어 동경(憧憬)과 의미를 합성시켰던 것이다. 세계 2위 음악시장 일본진출은 그만큼 ‘동경’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렇게 일본서 아이돌 데뷔기회를 얻기 위해 ‘대동경소녀’엔 무려 2500여명 지원자들이 몰렸다. 그리고 오디션을 통해 뽑힌 단 한 명의 합격자 장다연은 4년 정도 연수생 생활을 하다 결국 데뷔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허탈한 결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9년 뒤인 2018년, M.net은 일본 현역아이돌들을 한국 연습생들과 경쟁시켜 K팝 걸그룹을 만들어낸단 기획, ‘프로듀스 48’을 탄생시켰다. 아무리 봐도 시작부터 일본 측이 체면 구기는 콘셉트다. 거기서 뽑혀 나온 걸그룹 아이즈원은 한일양국에서 데뷔 즉시 대대적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서도 수많은 1020 시청자들이 위성자막방송을 통해 함께 프로그램을 지켜본 덕택이다. 그리고 ‘대동경소녀’로부터 딱 10년째 되는 해인 올해, 마침내 그 정반대 입장이자 확장 프로그램,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한국으로 유학 ‘오는’ 기획 ‘유학소녀’가 탄생된 것이다. 이쯤 되면 정말 일부러 그 방영일자를 맞췄을 법도 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대동경소녀’가 방영된 2009년은 K팝이 일대 전환을 맞이한 해였다. 특히 대중성 높은 걸그룹 차원에서 그랬다. 소녀시대의 ‘지’가 KBS ‘뮤직뱅크’ 9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국민가요로 등극했고, 그만큼 아이돌이 대중음악계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데뷔 팀들 역시 쟁쟁했다. 훗날 K팝 글로벌화 중심이 된 2NE1, 포미닛, 에프엑스, 티아라 등이 일제히 데뷔한 해다. 거기서부터 뭔가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1년, 당시 일본미디어로부터 ‘K팝 흑선’이라 불린 K팝 걸그룹들의 대대적 일본 상륙이 시작된다.

 

여러모로 감회가 남다른 대목이다. 특히 ‘그 시절’부터 K팝을 놓고 글로벌 소통을 시도해온 M.net 측으로선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동경소녀’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또 다른 지점도 알게 된다. 일단 프로그램 합작대상이었던 업프론트 프로모션 측, 나아가 J팝업계 전반의 ‘숨은 역사’에 대해서다.

 

사실 ‘대동경소녀’는 업프론트 프로모션 측 첫 해외합작기획이 아니었다. 그 전년도인 2008년, 이미 대만에서 ‘대동경소녀’와 거의 유사한 합작기획 ‘조안가족 New Star’를 내놓은 바 있다. 거기서 뽑힌 멤버들로 아이스크림무스메, 대소저 등 걸그룹을 데뷔시켰다. 애초 2007년경부터 업프론트 프로모션 측 큰 그림 자체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진출이었다. 본체 격 모닝구무스메에도 중국인 멤버 둘을 가입시켰고, 일본인 멤버 3명을 한국으로 보내 악수회도 개최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해외진출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비단 업프론트 프로모션뿐만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J팝계의 해외진출 모색 역사는 꽤 길다. 1979년 여자듀오 핑크레이디의 미국진출 시도부터 마츠다 세이코, 우타다 히카루까지 대중성 높은 여자아티스트들 중심으로 꾸준히 해외 문을 두드려왔다. 2002년엔 인기 보이그룹 SMAP 멤버 쿠사나기 츠요시까지 ‘초난강’이란 이름으로 한국진출을 꾀했다. 그런데 이 역시도 모두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내는 덴 실패했다.

 

지금 와서야 ‘일본은 내수시장이 너무 커 해외진출엔 관심 없기에 K팝과는 가는 길이 다르다’는 식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을 스스로 내놓는 것일 뿐, 실제적으론 ‘수십 년 간 실패만 계속했기에 결국 포기했다’는 해석이 더 적절한 셈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단순했다. 해외대중문화계와 문화적으로 제대로 소통해본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전, 내수시장 성격 자체부터 해외 트렌드를 왕성히 흡수하려는 태도가 희박했다. 시장 바탕이 글로벌화에 부적합한 상황으로 계속 치달으니 해외진출에도 한계가 올 수밖에 없었다. 현지 유명레이블과의 계약, 현지 유명아티스트와의 콜라보 등 그저 ‘돈’으로 할 수 있는 조건 마련에만 치중했다. 결과는 늘 ‘안 맞는 옷’으로 드러났다.

그렇게 헛발질이 계속 되던 때 한국대중음악계에선 듣도 보도 못한 해외음악장르들을 재빨리 ‘수입’해오던 서태지를 기점으로 ‘흡수’의 트렌드를 정착시키고 있었다. 그 차이가 쌓이고 쌓여, 결국 불과 10년 사이 ‘대동경소녀’에서 ‘유학소녀’로 180도 입장전환을 낳은 셈이다.

 

일단 해외를 먼저 알아야 해외진출도 가능한 법이다. 혁명은 의외로 바깥으로의 일방적 공격이 아니라 바깥을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 차원에선 더더욱 그렇다. 곱씹어볼 수록 ‘유학소녀’는 비단 M.net 측뿐 아니라 K팝업계 전체 입장에서도 꽤 의미가 깊은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우린 어떻게 그곳에서 이곳까지 오게 됐나’를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한단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엠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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