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최초의 프로골프 선수인 연덕춘(1916~2004년) 고문이 1941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 메이저 골프대회 일본오픈 타이틀을 획득한 지 85년 만에 ‘연덕춘’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전까지 일본골프협회(JGA) 기록에는 노부하라 도쿠하루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었다.
JGA가 1941년 일본오픈 우승자 명단을 ‘延徳春(Yern Duk Choon)’으로 수정했다. JGA 측은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노부하라 도쿠하루의 표기를 본명인 ‘연덕춘’으로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국적 역시 한국으로 바꾼다”고 전했다. 이어 “연덕춘은 1935년 조선 출신 최초의 프로 골퍼로 한국 프로 골프계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지난해 KPGA(한국프로골프)의 주도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KGA(대한골프협회)가 합류해 힘을 합쳤다. 이에 임원 및 실무자들이 JGA 측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설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골프계 관계자는 “단기간에 성사될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속해서 작업을 했다. 실무자는 물론 임원까지 모두 고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실 JGA 측에서 지난 4월 해당 내용을 수락했다. 이에 KPGA와 KGA 측이 사안을 확실하게 마무리 짓고 싶어 해당 내용을 담은 공문을 요청했고, 지난 6월 공문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KGA 관계자는 “고위 임원들은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현장에서 JGA 임원들과 직접 만나 해당 내용을 논의했다”며 “지속적인 노력에 JGA 측도 수락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연덕춘 고문은 1932년 군자리 골프코스(현 서울 성동구 능동 부근)에서 캐디 보조로 일하며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연덕춘 고문은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1935년 일본오픈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41년 이 대회 정상에 오르며 일제 강점기 한줄기 희망을 비췄다. 1945년 광복을 맞았으나, 얼마후 6·25전쟁이 터졌다. 이때 일본오픈 우승 트로피가 사라진 것으로 알졌다. 하지만 연덕춘 고문은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1963년 친목 단체 성격을 띤 프로골프회 결성을 주도했고, 이때 프로 골퍼 자격 부여 규정과 골퍼가 지켜야할 의무 조항을 명시했다. 이는 한국프로골프협회의 창립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후배 양성에 힘쓰며 ‘한국 골프계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기념해 KPGA 측은 “KPGA 창립회원이자 대한민구의 1호 프로골프 선수 연덕춘 고문의 우승 기록과 국적, 이름이 수정된다”며 “이를 기념해 오는 12일 ‘대한민국 1호 프로골프 선수 연덕춘, 역사와 전설을 복원하다’는 행사명으로 기념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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