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저 자신을 의심해요.”
하루하루 치열한 프로세계. 공 하나하나에 웃고 우는 것이 야구다. 그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다. 좌완 투수 백정현(삼성)의 내공이 남달라 보이는 배경이다. 좀처럼 일희일비하는 법이 없다. 사령탑이 “우리 불펜진의 히든카드”라고 엄지를 치켜세워도 정작 본인은 손사래를 친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중요한 위치서 제 몫을 하고 있다”고 자세를 낮춘다. 대신 묵묵히 구슬땀을 흘린다. 백정현은 “매 경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수장의 칭찬엔 이유가 있다. 14일까지 8경기서 평균자책점 2.19를 기록 중이다. 출발은 선발이었지만 부상자들이 빠르게 돌아오면서 1경기 만에 중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펜으로 나선 7경기에선 1경기(10일 대구 SSG전)를 제외하곤 모두 무실점이었다. ‘출발이 좋다’는 말에 백정현은 “수치적인 것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 못 던지면 또 요동치지 않는가. 큰 의미 없다고 본다. 그보다는 해야 될 것들, 특히 타자와 승부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약 8년 만에 불펜 임무를 수행한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대부분 선발(선발 145경기, 불펜 5경기)로 뛰었다. 기본적으로 긴 이닝을 끌어줄 수 있는데다 경험도 많기에 쓰임새가 다양하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불펜으로 보직을 바꾸면서 짧게 던지다 보니 본인이 가지고 있는 퍼포먼스를 다 발휘할 수 있게 된 듯하다. 더 힘 있게, 날카롭게 던지더라”고 말했다. 백정현 스스로도 “아무래도 중간에선 (선발 때보다) 순간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부분이 크다”고 전했다.
프로에 입문한 지도 어느덧 19년차가 됐다. 백정현은 2007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전체 8순위)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삼성의 왕조시절을 경험한, 몇 안 남은 자원이기도 하다. 배찬승, 이호성 등 어린 선수들이 많아진 만큼 베테랑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박 감독은 “기존 필승조가 있지만, 백정현이 부족한 부분을 잘 메워주고 있다. 우리가 불펜 쪽에 왼손 투수가 부족하지 않았나. 중요할 때 좌타라인을 막아줄 수 있는 카드”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곡차곡 쌓이는 세월만큼 우여곡절도 많았을 터. 백정현에겐 머릿속을 비워내는 시간이었다. 과거 욕심이 앞설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구체적인 목표도 세우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한다. 언제 어떻게 슬럼프가, 부상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당장 지금이 소중하다. 백정현은 “자신감도 좋지만, (내 경우엔) 자칫 오만해지기 쉽더라. 특별한 동기부여가 필요하진 않더라. 잘하고 싶으면 연습을 더하면 된다. 메모하고 공부한다”고 강조했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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