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펫보험의 장벽이 더 높아졌다. 장기보험은 사라지고, 자기 부담률은 30% 올랐다. 가입률이 1.8%에 그치는 펫보험 시장이 더 위축될 분위기다.
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펫보험을 운영 중인 보험사들은 이날부터 개정된 내용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펫보험 손해율이 급증해 자칫 ‘제2의 실손보험’이 될 수 있다는 금융당국의 우려가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펫보험의 역사는 200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주요 보험사에서 펫보험 상품을 연이어 출시했다. 2018년 메리츠화재가 국내 최초로 반려견 장기보험을 출시하며 판을 흔들었다. 펫보험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메리츠는 장기보험을 통해 펫보험 시장 점유율 1위사로 뛰어올랐다. 이후 다른 보험사들도 차례로 장기보험 상품을 내놨다.
최장 20년까지 보장에 재가입 기간도 3년 또는 5년이 늘어난 가운데 다른 혜택도 계속 추가됐다. 진료비용에 따른 보장 비율은 50∼100%까지 선택할 수 있어 자기 부담금이 없는 상품이 생겼고, 보험금 수령에 따른 보험료 할인·할증 제도도 따로 없었다. 이에 펫보험 가입자 수는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로, 지난해 상반기 계약건수(13만2764건)는 전년 대비 21.7% 증가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날부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재가입 주기는 1년으로 축소되고, 자기 부담률도 30%로 올라간다. 최소 자기 부담금은 3만원으로 정해졌다. 펫보험 관계자는 “당장 보험료가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가 매년 재가입해야 하므로 그 사이 치료 이력이 있으면 다음해에는 가입이 거절되거나 보험료가 크게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기존 가입자는 갱신 주기가 돌아오더라도 기존에 든 보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펫보험이 이같이 개정되는 것은 금융당국의 감독 행정 때문이다. 동물 관련 진료비 표준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펫보험을 종전처럼 운영할 경우 손해율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제도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펫보험이 기존처럼 팔리면 실손보험처럼 나중에는 수습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진료비 표준화 등이 갖춰지고 안정화될 때까지는 재가입 주기를 짧게 운영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이번 조치로 펫보험 시장이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1년마다 재가입을 해야 하고 자기 부담금도 올라가니 신규 가입자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라며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율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